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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5.24 20:52 수정 : 2011.05.24 20:52

장귀연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교수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80%, 4년제 대학 진학률도 60% 가까이 된다. 고등교육 취학률이 15%를 넘으면 대중화 단계, 50%를 넘으면 보편화 단계라고 하는데, 한국의 대학교육은 보편화 단계에 접어든 지 오래다. 내가 대학 다닐 때 자주 들었던 “대학생은 특권층”이라는 말은 흘러간 옛말이다.

대학생들은 누구인가? 더는 ‘특권층’이 아닌 이들은 ‘노동자’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시간강사로 이 대학 저 대학 떠돌며 학생들에게 꼭 리포트로 내주던 과제가 있다. 자신의 ‘알바’ 경험을 노동사회학 이론에 맞추어 분석하기. 학생들의 리포트는 내가 처음에 상상했던 것을 훌쩍 넘어섰다. 90% 이상 알바를 하고, 그것도 대학생 알바라 하면 쉽게 떠오르는 과외나 편의점 알바 수준이 아니다. 공장의 생산직, 판매직, 서비스직, 사무직 등 모든 직종을 망라하고, 동네 빵집에서 대기업 사무실까지 분포되어 있다. 물론, 비정규직이다. 알바 때문에 학업에 지장을 받는 일이 수두룩하며, 대학생이 주인지 노동자가 주인지 헷갈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론에 맞추어 분석하라”는 딱딱한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노동자의 애환·보람·분노가 배어나오는 ‘리포트’들을 읽으며 나는 울다 웃다 한다.

내가 대학생이던 20년 전과는 많이 다르다. 일단 그땐 아르바이트하는 학생들 비율이 이리 높지 않았다. 주로 과외나 학교 앞 카페 서빙 정도였다. 나는 알바를 쉬지 않았던 축이었지만, 과외 알바 한두달이면 한 학기 등록금이었다. 지금은 어림없는 얘기다. 등록금은 몇배가 올랐고, 사교육 산업이 형성되어 대학생 과외 수요는 대폭 줄어들었다. 실제로 과외 알바비는 2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차라리 다른 일자리를 찾는 게 낫다. 돈을 벌어야 하는 친구들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취직을 했었다. 그때는 대학 안 가도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그것도 어렵다. 대학교육이 보편화되었으니 안 갈 수 없다. 물론 대학에 들어와도 더 치열한 경쟁의 연장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입시경쟁(진학은 더 쉬워졌어도 어느 대학을 가느냐도 중요하니까)에 매진했다면, 대학은 취업을 목표로 한 경쟁의 전쟁터다. 그래서 일하는 틈틈이 수업도 들어가야 하고, 학점이 잘 안 나오면 선생에게 호소하는 메일도 보내야 하고, 학원 다니면서 사교육도 받아야 한다. 그러느라 잔뜩 피곤에 찌든 학생들을 마주하고 보면 안타까운 마음뿐.

그러니까 이런 구조다. 대학교육이 보편화됨에 따라 이제 진학을 하지 않기도 어려워졌다. 그런데 오히려 대학 등록금은 엄청나게 높아졌다. 그러니 대학생이자 노동자로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도 다녀야 하니 비정규직으로 일해야 한다.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면서도 졸업하면 나아지겠거니 참고 견딘다. 그리고 졸업하면 또 취업 전쟁. 기업들은 좋겠다. 한편으로 이 청년들을 싼 노동력으로 부린다. 다른 한편으로 기업화된 대학은 비싼 등록금으로 착취한다. 그리고 몇년 동안 노동자들이 제 돈 들여 직업능력 개발을 좀더 해 온다. 그러나 그동안 이 청년들은 죽어나간다. 2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대학교육의 보편화는 탓할 게 못 된다. 사회도 기술도 복잡해지고 배워야 할 것도 늘어난다. 교육 햇수의 증가는 세계적 추세다. 문제는 보편적인 교육은 국가 책임이라는 거다. 이는 자본주의니 아니니를 떠난 문제다. 근대국가의 지표 중 하나는 다음 세대의 교육을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다. 대학생은 더 이상 ‘특권층’이 아니라 사회에 나가기 위해 필수적인 교육을 받고 있는 세대인데, 이 교육의 부담이 개인의 몫일 수 없다.

지금 정계에서 대학 등록금 반값이니 무상이니 인하니 떠들썩하다. 부디 선거용 헛된 공약에 그치지 말고 국가의 책임을 명심해 주길. 아, 그리고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의 권리 보장도. 학생이자 노동자인 이들의 리포트를 읽는 내가 분노와 슬픔보다는 기쁨과 보람을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도록.

장귀연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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