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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5.29 21:34 수정 : 2011.05.29 21:38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 논의가 고통스럽게 지연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내심 반가웠다. 생각해보라. 일본 원자력 대재난, 지구적 국제질서의 대혼란, 다가오는 한국 경제의 대위기와 한반도 지각변동 등 21세기 인류 문명과 한국 사회의 전환기인 지금 얼마나 많은 새로운 담론과 전략 논의가 필요하겠는가? 오죽하면 라투르와 같은 유럽의 지성은 지구 생명체의 사물들을 대변하는 의회의 필요성이라는 근원적 질문까지 던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세상에, 두 정당의 통합이 위의 이슈들 때문이 아니라 북한의 핵과 세습 문제 비판 여부와 선거연대 방침 문제로 답보인 것을 알고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북한의 핵이나 세습을 비판하는 것은 정상인이냐 비정상인이냐의 기준 아닌가? 그리고 선거연대의 방침은 자기들이 미리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년 시민들의 역동적 움직임 속에서 판단하는 것이 대중 노선에 기초한 정치의 상식 아닌가?

내년 총선과 대선은 야권 주도의 소셜네트워크 선거 혁명이 예견된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포스트모던 선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난 아직 한국의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은 근대적 훈련조차 충실하게 내면화되어 있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이념이 아니라 시민들의 문제의식과 욕구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전제 위에서 정책노선이 결정된다는 근대적 정당의 상식이 한국에서는 자주 망각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무상급식·무상의료를 이야기하기 전에 시민들의 구체적 상태와 문제의식은 적당히 확인할 뿐이다. 이는 이른바 정치엘리트로 자임하면서도 결국 자신들의 예측과 크게 다른 선거 결과에 자주 놀라는 기이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난 수년 전 정책의 선언이 아니라 이를 설득력 있는 메시지로 구성하는 과학적 언어 프레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레이코프의 저작이 여의도에서 화제가 될 때 반가웠다. 하지만 1년 전 진보의 메시지 싱크탱크를 만들자고 그렇게 외쳐도 그리 공감대가 높지 않음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는 중요한 이슈가 발생했는데도 그저 자기들끼리의 관성적 논의 후 기자회견장에 나타나는 행태에 경악을 금치 못한 적도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근원적으로는 여전히 자신의 이념과 정책을 선언하는 것을 정치로 이해하는 단계에 의식이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 틈새에서 보수진영은 천안함, 무상의료, 강남좌파 등의 담론에서 진보의 메시지 허점을 탁월하게 파고들고 있다.

난 이런 문제들을 돌파하기 위해 오래전 ‘진보의 슈퍼스타케이’ 무대를 이 지면에서 제언한 적이 있다. 지금 진보진영의 위기의식으로 보아 기존 자신의 정당들은 존속하더라도 최소한 이 단일한 경쟁 무대는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저 시민들을 동원하는 흥행무대나 혹은 여권과 일대일로 맞붙기 위해 후보 선택을 줄이는 전술 차원에서만 이해하는 것 같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는 이른바 정치엘리트들이 거대한 시민의 바다 속에서 시민들로부터 진심으로 배우고 자신의 메시지와 내공을 평가받으며 시민정치가로 성장하기 위한 무대라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임재범의 경지인지 아니면 가능성을 가진 허각인지 혹은 그저 자칭 프로였는지 모든 것이 다 드러날 것이다.

이 성숙의 지난한 과정에 대한 제도적·문화적 고민이 약하면 일시적 흥행 성공이나 혹은 어떠한 연립정부 약속과 선거 승리도 다 공허한 결말로 귀결될 것이다. 왜냐하면 시민적 정당에서 단단하게 성숙하지 않은 정치엘리트들의 미래에는 곧 롤러코스터의 추락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안병진 /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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