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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05 18:30 수정 : 2011.06.05 19:22

야유의 언어로 가득 찬 진보 담론
공간에서 어떤 통합의 열정이
발휘될지 생각하면 막막해진다

며칠 전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에서 진보정치 대통합을 위한 합의문을 발표했다. 여러 세력이 일정한 절차와 과정을 거쳐 논의하고 결과를 냈다는 점을 중시하고 싶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이번 합의문의 내용이 마음에 안 든다. 논란이 되었던 북한 관련 문구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많은 공약과 진술들이 ‘죽은 말’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흡사 도서관 기록보관실에서 오래전 문서를 보는 느낌도 들었고, 그간 관성적으로 해온 각자의 주장들을 조합한 것 같다는 인상도 받았다. 물론 이번 합의문만 문제가 아니라 기존의 당 강령이나 관련 문서 역시 같은 문제가 있었다. 평균적 시민의 눈높이와 민주적 가치에 맞게 내용과 표현 모두 좋아졌으면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다른 데 있다고 본다. 그것은 지금까지 진보정당 내부를 지켜보면서 하게 된 걱정인데, 생각이 다른 세력과 지지자들 사이에서 통합정당을 만들어갈 심리적 조건과 조직적 실력을 갖추고 있나 하는 의구심이다. 내가 보기에 2008년 민주노동당의 분열은 그럴 조건과 실력을 갖추지 못한 우리 사회 진보의 실제 모습을 잘 보여준 사례였다. 그 뒤 얼마나 달라졌을까? 당시 많은 사람들은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나뉘었으니 규모는 줄었지만 즐겁게 당 활동을 하게 될 거라 기대했다. 그런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 이견은 다시 만들어졌고 오가는 말은 사나워졌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모욕 주는 일로 자신의 일을 다했다는 듯 행동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가끔 그런 사람들의 글을 보게 되는데, 어떻게 하면 더 세게 야유하고 저주할까를 연구라도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유로운 의견 표출과 이견이 조직 활력의 원천으로 기능할 수 있게 하는 문제에서 실력을 쌓지 못했기에, 협동과 우애의 조직문화는 성장할 수 없었다. 어떤 조직이든 그 실력은 이견을 잘 다루는 데 있지, 없앨 수 없는 이견을 없애려 하거나 이견 때문에 불편해하고 그 원인을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하면서 스스로의 내면이 황폐해지는 데 있지 않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고 괴로워했다.

내가 볼 때 이번 정당 통합 시도 역시 이런 분위기에서 “달리 대안이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소멸한다”는 비관적 위기감의 발로였지, 뭔가 달라져야겠다는 내부 혁신의 결과는 아니었다. 이런 취약한 내부 동력을 가지고 사람들의 관심과 열정을 이끌 만한 진보정당 통합을 현실화해낼 수 있을지, 현재와 같은 야유의 언어로 가득 찬 진보 담론의 공간에서 어떤 통합의 열정이 발휘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막막해진다.

함께 정치학 공부를 했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도 진보정당 활동을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했던 선배가 있다. 그의 열성은 늘 우리에게 미안함을 갖게 했다. 어느 날 늦은 술자리에서 선배는 진보정당 내부에서 발생했던 크고 작은 다툼들 때문에 괴로워했던 그간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요즘 자신을 불행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사람들은 보수가 아니고 진보라고 했을 때, 너무 가슴이 아팠다. 신자유주의 비판도 좋고 집권세력의 잘못된 정책 행위에 항의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진보 스스로도 내적으로 개선해가야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을 이제부터라도 제발 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 비판언론들도 지나치게 보수정당들에 맞춰진 시선을 돌려 진보정당에도 합리적인 비판이든 냉정한 분석이든 더 깊은 관심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진보가 좋아지는 것이 보수의 지나침을 견제하는 최선의 길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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