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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07 18:48 수정 : 2011.06.07 18:48

장귀연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교수

나는 돈을 내고 서비스와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이기도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노동자이기도 하다

‘고객의 권리’라는 말이 있다. 예전에 더 많이 쓰던 ‘손님은 왕’이라는 어구와 비슷한 맥락으로 쓰이는 것 같다. 그러니까 돈을 내는 소비자는 무조건 친절하고 좋은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거다. 틀린 말은 아닌데도 나는 고객의 권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뭔가 어설프게 어울리지 않는 듯한 위화감을 느끼곤 한다. ‘권리’란 차별 없이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것을 지칭하는 말인데, ‘고객’의 권리는 돈을 내는 사람에게만 부여되는 것이니 돈을 내지 않는 사람이나 잠재적 고객도 되지 못할 사람은 배제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다. 또는 고객의 권리가 왕왕 노동자의 권리 침해를 은폐하는 데 쓰일 때가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얼마 전 냉장고에서 물이 새 서비스센터에 전화했다. 전화한 지 몇시간 만에 수리기사가 찾아와 빠르게 수리해놓고 가서 매우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자 다시 물이 새는 것 아닌가. 이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다시 서비스센터에 전화하면 혹시 그 기사가 경고나 불이익을 받는 것 아닐까. 가전제품 수리라든지 다른 서비스를 받은 뒤에 전화를 받거나 고객카드에 써넣어야 할 때가 많다. 서비스 결과에 만족하셨습니까? 예약 시간이 잘 지켜졌습니까? 직원이 친절하였습니까? 항목별로 세세한 질문에 ‘매우 만족’이 아니라 ‘만족’으로만 답해도 담당 노동자에게 불이익이 간다는 것을 알고 나서, 나는 ‘매우 만족’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사후 설문도 아니고 수리 자체가 잘 안되었다고 전화하면 불만 접수로 처리되어 더 문제가 되진 않을까. 혼자 온갖 가정에 고민을 하다가 결국 쓰레기통을 뒤져 기사에게 받은 명함을 찾아냈다. 서비스센터에 전화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연락하면 관리 기록에 남지 않을 테니까.

괜한 오지랖일 수도 있고, 말 그대로 ‘고객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과는 동떨어진 행동일 수도 있다. 돈을 냈으면 만족스런 서비스를 받아야 하고, 제대로 일을 못한 노동자의 잘못에 불만을 갖는 것은 당연한 고객의 권리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가 불이익을 받든 말든 신경을 써야 할 이유는 없다. 아마 이런 오지랖은 노동자들을 많이 만나는 나의 직업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도 일하다가 실수할 때가 있다. 피곤하고 지치면 불친절해지기도 한다. 그런 걸 상기하면 꼭 직업병이 아니더라도 역지사지, 내가 좀 불편해도 고객의 권리를 주장하며 노동자를 닦달하고 싶은 마음은 별로 들지 않는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 사람들이 가장 놀라운 세태 풍경으로 꼽는 것이 각종 서비스 노동자들의 신속함과 친절함이다. 반대로 외국에서 살게 된 한국 사람들은 언제 올지 기약 없는 수리기사와 불친절한 접수센터를 대할 때마다 한국이 그립다고 아우성친다. 이른바 선진국이란 나라들에서도 그렇다. 그런데 이렇게 세계에 자랑할 만한 ‘고객만족 서비스’ 밑에는 노동자의 피와 땀이 흐르고 있다.

가뜩이나 잘 알려진 대로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부동의 세계 최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기에 약간의 실수나 불친절도 용납하지 않는 스트레스가 노동강도를 더욱 강화한다. 고객의 권리는 종종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것으로 지켜지곤 한다.

나는 돈을 내고 서비스와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곳에서는 노동자이기도 하다. 나의 노동을 생각해보면 지금보다 조금 불편해지더라도 다른 노동자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고객만족이라는 명분으로 노동자의 마지막 땀과 피까지 쥐어짜내지 못하도록. 고객의 권리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노동자의 삶이고, 결국 우리 모두 노동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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