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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09 19:09 수정 : 2011.06.09 19:09

한창훈 소설가

삼바카니발, 송끄란, 홀리… 모두 몸을 쓰는 것이다.
그런 다음개운한 얼굴로 일상으로 돌아간다

먼저 장면 하나.

지난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 2차전. 우리나라와 아르헨티나가 맞붙은 날이었다. 마침 친구를 만난 나는 축구시합을 볼 만한 곳을 물색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도심 뒤편 고만고만한 호프집. 들어가보니 화장실 쪽 구석자리 외에는 모두 젊은 친구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중 대형 스크린 아래, 최고의 명당 자리는 젊은 아가씨 셋이서 차지하고 있었다.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는지 벌써부터 얼굴이 붉었다. 시합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십여분 정도 지났을 때 박주영이 자살골을 넣었다. 순간 세 아가씨는 자지러질 듯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흥분은 쉬 가라앉지 않았다. 보다못한 옆 좌석의 남자가 말했다.

자살골 넣은 거예요. 맞아요, 박주영이 골 넣었어요. 자살골이라니까요. 그건 또 뭔데요, 안 좋은 거예요?

남자는 설명을 포기하고 고개를 돌렸다. 세 여자는 박주영이 골을 넣었는데 분위기가 왜들 이러지? 하는 표정이었다. 그 사람들뿐만이 아니다. 요즘 야구장에도 젊은 친구들이 많이 모이는데 들어보면 여자들은 룰을 잘 모른다고 한다. 그러면서 고함을 지르고 박수를 친다.

이거, 그 사람들 탓할 거 못 된다. 나는 그런 모습에서 축제가 없는 우리의 현실을 본다. 축제가 갖는 미덕 중 중요한 것 하나가 배설이다. 물리적인 제약에서 벗어나 스트레스를 합법적으로 풀어내는 것.

리우의 삼바카니발, 타이의 송끄란, 인도의 홀리, 여러 도시에서 하는 베개싸움축제, 핼러윈, 독일 맥주, 영국 노팅힐, 베네치아카니발, 몽골 나담, 일본의 네부타, 이탈리아 오렌지와 스페인 토마토축제(이 둘은 먹을 것 가지고 하는 거라 좀 그렇지만)가 그렇다. 모두 몸을 쓰는 것이다. 몸을 움직여 맘껏 풀어낸 다음 개운한 얼굴로 일상으로 돌아들 간다.

조선 오백년을 거치는 동안 우리는 축제를 가져보지 못했다. 기껏해야 농사 기간에 맞춰 꽹과리와 장구를 치는 거였다. 그나마 있는 것도 지배계급의 당위성을 홍보하는 거였다. 축제를 경험해보지 못한 역사가 우리를 이렇게 만든다. 집중하고 악을 쓰고 풀어내야 하는데 그럴 공간과 시스템이 없다는 것. 이거 불행이다. 그래서 룰을 모르면서도 스포츠에 열광한다. 내질러도 되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는 이것을 애국심으로 종종 잘못 읽어낸다.


내가 사는 섬에는 단체여행 오는 노인들이 많다. 어떤 때는 아침 여덟시에 유람선에서 모두들 관광버스 춤을 춘다. 젊은이와 노인들이 그렇다면 중년은 어떤가. 티브이가 있어야 어디로 놀러 갈지 정할 수 있다. 값비싼 자가용 몰고 <1박2일> 같은 프로그램에 나온 곳을 찾아간다. 그것 때문에 남해에 있는 ‘독일인 마을’이라는 데가 길이 막혀 몹시 시끄러웠단다. 그 프로그램에 나온 곳은 거의 그렇다.

요즘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축제를 벌인다. 하지만 어디를 봐도 일반 대중이 주체로 참여하는 곳은 거의 없다. 보여줄 테니 와서 조용히 구경하고 돌아가라는 것뿐이다. 그래서 어느 축제든 시끄러운 곳은 가수들의 공연장과 먹거리 장터, 두 군데뿐이다. 진정한 의미의 축제는 공유와 연대라는 광장의 역할과 맞물리는데 그 토대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광장을 두려워하는 지배계급 아래서 살아왔다. 통치하는 것만 좋아하는 부류는 사람들 모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런 정권일수록 밀실이 횡행하기 마련이고 그나마 있는 광장을 관리·감독하고 사회구성원들끼리 서로 신고하게 만든다. 백성들의 소통과 배설이 두려워 입을 묶어두는 나라에서는 잘산다 한들 여가의 질이 낮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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