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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15 19:09 수정 : 2011.06.16 21:50

황광우 작가

박종철의 공장 일기가 기록하듯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사랑 없이
민주주의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1987년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악독한 고문에 죽은 박종철,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역사의 제단에 바친 박종철을 사람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나, 혹시 박종철을 과격한 투사로 떠올리는 분이 있다면, 나는 조용히 말하고 싶다. 내가 아는 종철은 옳은 것은 옳다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한 바른 청년이었다고. 종철은 그 누나의 회고에 따르면 길을 가다가도 어린애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참 동안이나 같이 놀아주던 순결한 청년이었다. 종철의 성품에 특이한 점이 있었다면, 불의에 대해 우직할 만큼 비타협적이었고, 가난한 이웃들에 대한 사랑이 남달리 깊었을 뿐이다.(<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에서) 그의 공장 일기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흐리고 비가 잠깐 왔다. 이제 겨우 작업 3일째인데 벌써 일하는 것이 지루하고 따분해진다. 이런 노동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을 때를 위하여 내가 할 일은 무엇일까?”(<박종철 평전>에서)

해마다 6월이 오면 나의 가슴엔 종철의 맑은 얼굴이 떠오른다. 종철이 죽은 것은 나와 같은 수배자들 때문이었다. 종철은 선배의 은신처를 대라는 수사관들의 요구에 불응하여 끝까지 저항하다 죽어간 것이다. 나이 스물셋, 청년은 역사의 신전에 자신의 목숨을 바쳤는데,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지난 6월10일엔 광화문에 갔다. 24년 전 그날 우리들은 이곳에서 온종일 화염병을 던졌다. 그 많던 유인물도 보이지 않았고 최루탄 가스도 맡을 수 없었다. 돌이켜 보니 그때 정치투쟁은 우리의 삶이었다. 학살자가 권좌에 앉아 있는 나라에서 젊은이가 있을 곳이 전선이 아니고 어디겠는가? 그런데 오늘의 젊은이들은 삶이 정치투쟁일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청년 실업자는 300만명을 웃돌고, 대학 등록금은 1000만원의 시대로 진입하고….

불평등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교사와 공무원, 대기업 노동자들은 그럭저럭 안정된 삶을 살고 있으나, 영세한 자영업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죽어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은 체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인력들에겐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면서, 별볼일없는 무리들, 도시와 농촌의 자영업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시장의 논리만을 강요하고 있다. 대기업 노동자들에겐 자녀들의 대학 등록금을 전액 지원해주면서, 자영업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국물도 없다.

“하늘의 도는 여유 있는 것을 덜어내어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데, 사람의 도는 부족한 것을 덜어내어 여유 있는 것에 바친다”(<도덕경>)고 일찍이 노자는 인간의 불평등을 갈파하였는데, 오늘 우리의 불평등을 예견이나 하였던 것일까? 다시 생활전선에 나설 수밖에 없는 가난한 집의 자식들은 천금 같은 청춘을 쪼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국가-대기업-건물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의 맨 밑에 있는 영세업주들로부터 또다시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장 더러운 임금을 강제당한다. 예전엔 수업 시간표에 맞춰서 아르바이트 시간을 정했는데, 요즘엔 아르바이트 시간에 맞춰 수업 시간표를 짠다고 한다.

민주주의는 인간 존중에서 시작하고, 평등에서 완성된다. 박종철의 공장 일기가 기록하듯,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는 곳에 민주주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처럼 인간을 우롱하는 불평등한 현실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같은 형제라고 말할 수 있는가? 5조원이면 반값 등록금이 가능하다. 300조원대의 예산을 집행하는 정부가, 부자들에겐 이미 10조원의 세금을 깎아준 정부가, 유독 반값 등록금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가난한 서민들을 향한 모멸이 아니고 무엇인가?


■ 바로잡습니다

6월16일치 31면 ‘불평등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칼럼에서 교사와 공무원에게 자녀들의 대학 등록금을 전액 지원해준다고 썼으나, 실제로 교원공제회와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서 학자금 대출을 할 뿐 정부의 지원은 없습니다. 교사·공무원 여러분과 독자들께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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