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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16 19:02 수정 : 2011.06.16 19:08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국회의장은 법인화법 통과를
누구에게선가 요청받았다는데,
누구인지는 밝힐 수 없다고 한다

반값 등록금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이 뜨겁다. 부모가 촛불집회에 가는 자녀에게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격려까지 한다고 한다.

서울대 법인화 문제는 그 정도 여론의 관심을 끌지는 못하고 있다. 사실 지난해 12월8일 국회에서 서울대법인화법이 여당 단독 날치기로 통과된 후 서울대 일부 구성원들이 계속 문제를 제기했지만 언론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전환의 계기가 된 것은 5월30일 학생들이 ‘법인설립준비위원회’ 해체를 요구하면서 총장실이 있는 본부(행정관)를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한 일이었다. 그 후 20일이 되어 가는데, 학생들을 비판하는 목소리, 학교 쪽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산발적으로 들릴 뿐, 학생들과 학교 쪽의 입장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많은 사람들은 법인화가 무엇인지 아직도 그 개념을 두고 논란을 벌이고 있다. 혹자는 기업화라 하고, 다른 이는 자율화라고 한다. 서울대가 법인화를 통해 세계적 대학으로 발전하리라 희망하는 분도 있고, 일본의 국립대 법인화 이후 도쿄대를 비롯한 해당 대학들의 ‘세계 랭킹’이 모두 크게 떨어졌다(이것은 사실이다)는 것을 근거로 들며 반대하는 분도 있다. 그렇듯 법인화를 두고 다양한 견해가 있다. 그런데 이 논의들이 만개하고 부딪치고 조정되어 하나의 합의안이 만들어지기 전에 법인화는 유령처럼 떠돌더니 그다음에는 국회에서 통과되었다는 소문 속의 무엇인가로 전해졌다.

서울대 법인화 법안은 원래 지난해 정기국회에 정부 법안으로 제출되었으며, 해당 상임위인 교과위의 심의와 수정을 거친 다음 본회의에서 다루도록 되어 있었다. 주무장관인 이주호 교과부 장관도 그런 순서를 밟을 계획이었음을 인정했다. 그런데 이 법안은 아무런 검토·토론도 거치지 않은 채 갑자기 본회의에 2011년 예산, 4대강 예산과 함께 국회의장 직권으로 상정되었고 상정 1분 만에 통과되었다. 직권상정이라는 것은 정당들 간의 극심한 의견대립으로 조정이 불가능할 때 국회의장이 최후수단으로 택하는 방법이다. 서울대 법인화법이 그런 대상이었을까? 지난 3월11일 임시국회 속기록을 보면, 이주호 장관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 법이 통과되었다고 한다.(298회 국회 교과위 속기록 22~23쪽) 또 국회의장은 서울대 법인화법 통과를 누구에게선가 요청받았다는데, 그 요청의 주체가 누구인지는 밝힐 수 없다고 한다.(속기록 46~47쪽) 즉 국회의장도 무슨 사명감이 있어서 이 법을 그렇게 날치기 통과시킨 것은 아니란 이야기다. 날치기를 요청한 사람은 누구이며,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내가 만난 한 국회의원은 원래 법인화법은 정부의 지원을 줄이기 위해 추진한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어쨌건 한 국립대학의 운명이 최고 정치권의 어떤 의도에 따라 순식간에 결정된 것이다.

이런 사태 속에서 서울대 구성원들 중에는 (법인화 찬성론자 중에도) 대학의 존엄성이 크게 손상받았다고 느끼는 이가 적지 않다. 그것은 이 법으로 얻을 현실적 이득이나 손해에 대한 논의와는 전혀 무관하다. 자기 대학의 운명이 토론의 가치조차 없는 대상인 양 취급받았다는 데서 비롯되는 상처의 문제다. 날치기는 정치권에서 했는데, 갈등은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다. 정치권에서 현재의 법을 폐기하고 정상적 절차에 따라 재논의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라, 자기는 ‘바담 풍’을 해도 다른 사람은 ‘바람 풍’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그렇지, 가장 중요한 문제에서 자율성과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당한 대학이 젊은 대학생들에게 법과 원칙을 지키는 민주시민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은 낯뜨거운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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