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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29 19:14 수정 : 2011.06.29 20:36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며
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지역의
사례까지 끌어대어 비난한다

고등학교 3학년과 대학 1학년 사이, 그 한두달의 차이가 대한민국처럼 극적인 나라도 드물 것이다. 경기도교육청을 시발로 학생인권조례가 생겨나면서 달라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불과 두어달 전까지 상고머리 혹은 귀밑 몇센티미터의 머리 길이를 하던 학생들은 요란한 파마에 염색을 하고 신입생 파티에서 원 없이 술을 마신다.

그런데 겉은 이렇게 요란하게 바뀌건만 강의시간에 떠들고 엎드려 자는 행태가 종종 대학 1학년 강의실까지 여전히 이어진다고 한다. 자기 대학 교수가 아니거나 시간강사의 강의일 때 특히 심하다고 한다. 그래서 서울의 한 유명대학에서는 “조용히 하세요”를 반복하던 새내기 총각 시간강사가 그만 울며 뛰쳐나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교수들마다 대책도 가지각색, “여전히 ‘고삐리’ 티를 못 벗었으니 고등학교 시절처럼 떠든 학생은 앞에 나와 서 있으라”고 하는 교수도 있다고 한다. 더러는 잡담하는 학생에게 분필을 날리는 ‘무협형’도 있는 모양이다. 내가 좋아하는 서울 신촌의 한 선배 교수는 강의 중간에 불쑥 나가는 학생에게 “강의를 재미없게 해서 미안합니다” 하고 꾸벅 절을 했다나.

한편에서는 고등학교에서 수업 태도를 저렇게밖에 못 가르쳤느냐고 분개하는 이도 있다. 뒷자리 반 이상을 아예 포기하고 잘 따라오는 학생들 중심으로 입시수업을 한다는 ‘잠자는 교실’의 후유증일까.

그런데 희한한 것은 이렇게 ‘개념 없던’ 신입생들이 1학년 2학기가 되고 2학년이 되면서 의젓해지는 것이다. 강의시간에 분첩을 꺼내어 거울을 힐끔거리던 새내기 숙녀들도 2·3학년이 되면 한결 세련되어 간다.

권리가 의무인 것을, 자율이 책임인 것을 이내 터득해가는 것이다. 다른 이를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 무지하고 수치스러운 것임을 깨달아가는 것이다.

대개 교수들은 떠들거나 아예 엎드려 자는 학생에게 수업에 집중하든지, 그게 정 어려우면 벤치에 나가 사색을 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좋고 수업 분위기를 방해하지 않는 책임있는 행동이므로 조용히 나가도록 선택을 하게 한다는데, 그럴 때 대개는 더 재미있게 강의할 수는 없나 하는 자괴감을 아울러 느낀다고 고백한다.

음성적인 선후배 간의 폭력이 때로 불거지지만 어쨌든 모두들 대학에서는 체벌 같은 건, 이른바 간접체벌이든 직접체벌이든, 상상할 수 없는 일로 치부한다. ‘지성인’, ‘지성의 전당’이라는 호명이 허구만은 아닌가 보다.


그런데 고교 졸업생 80~90%가 대학에 진학하니 두어달 전 고등학교 교문 안의 똑같은 학생들이 대학으로 옮겨오는 것인데 처우에 그렇게까지 차이를 두어야 하나.

과도기의 애로이겠으나, 어떤 이들은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실이 무너지고 교권이 짓밟히고 있다고, 때로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전의 일까지, 혹은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지역의 사례까지 끌어대어 비난한다.

맨 먼저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고 시행한 경기도교육청은 사실 학생인권조례 이전에 교권헌장을 먼저 채택했다고 하는데, 일부에서 제시하는 ‘교실 붕괴’ 사례 중에는 이런 헌장이나 조례가 아니라 형법의 대상으로 다루어야 할 사례까지 뒤섞여 있어 사태를 과장하고 본질을 호도한다.

더욱이 요즘 아이들은 획일화와는 거리가 먼 분방한 개성의 아이티(IT)세대 ‘신인류’ 아닌가. 하기야 엉뚱한, 실은 그래서 더욱 영롱한 꿈들이 저마다 피어나는 학생들 속에서 때로 속들이 오죽하실까. 그래도 초중등이든 대학이든 교직에 있다면 학생인권 때문에 교권이 무너진다고 말하는 것은, 설사 일부에서라 해도, 민망한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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