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창훈 소설가
|
문제는 모욕을 당한 사람이
김여진씨 말고 더 있다는 것이다
바로 여진족과 밥집 아줌마이다
동성애 커밍아웃을 한 어떤 남자가 배우 김여진씨에게 모욕을 주면서 ‘연예 뉴스에는 한 번도 못 나온 대신 9시 뉴스에 매일 나오는 그 밥집 아줌마처럼 생긴 여진족 여자’라고 말했단다. ‘토 쏠려서 조금 전에 소화제 한 병 마셨다’고도 했다.
이 정도면 비난의 천박성이 수준급이다. 그 자신이 성적 소수자이면서도, 차별받는 소수의 사정을 헤아리고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김여진씨에게 그런 발언을 한 것인데, 그 이유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원하고 최근에는 대학교 반값 등록금 시위에 참여하고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에 들어갔다가 경찰에 연행되기도 하고 고공크레인 위에서 농성중인 김진숙씨를 위해 한진중공업 회장에게 눈물로 하소연을 한 그녀의 행보가 싫었을 것이다. 잘난 척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돈과 권력이 타인의 아픔에 관심이 없는, 자신의 이익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 뜬 봉사들을 많이 만들어내 버렸으니까.
그는 또 그녀에게 정치를 하고 싶은 것이냐고 비아냥댔는데 정작 자신의 말도 정치적이라는 것은 모르는 듯하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은 기본적으로 정치성을 띤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다. 누군가 그에게, 보수정치인이 되고 싶은 거냐고 물으면 그는 어떤 대답을 할까.
아무튼, 문제는 김여진씨 말고 모욕을 당한 사람이 더 있다는 것이다. 바로 여진족과 밥집 아줌마이다. 여진족은 지금 어디에들 살고 있는지 잘 몰라서 말하기가 뭐하지만 나는 밥집 아줌마가 마음에 걸린다. 도대체 밥집 아줌마를 이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는 버릇은 어디에서 생겼을까.
그동안 나는 수많은 밥집 아줌마들을 만났다. 물론 다 좋은 기억은 아니다. 터무니없이 비싸게 받는 아줌마, 맛과 정성보다는 그릇 수만으로 장사하는 아줌마, 안 먹으려면 먹지 마라 너희들 아니어도 손님 많다 유세 떠는 아줌마들 적잖았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많은, 좋은 아줌마들을 보고 살아왔다. 밥공기 하나 더 슬그머니 두고 가는 아줌마, 민박집과 차편을 전화로 물어봐서 알아봐준 아줌마, 심지어는 나를 사위 삼고 싶어했던 공사판 함바집 아줌마도 있었다.
|
배우 김여진
|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 시가 생각난다. 시인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밥집 아줌마 무시하지 마라. 너는 한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 제대로 차려주어 본 적 있느냐.’ 천박한 비난에도 김여진씨는 이렇게 대응했다. ‘그래도 당신이 차별을 받을 때 함께 싸워드리겠다.’ 시민사회 구성원의 덕목은 이 정도 되어야 한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