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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7.03 19:33 수정 : 2011.07.04 18:26

돈 때문에 눈물짓는 학생들에게
미안함을 느끼지는 못할망정
떼쓰지 말라고 얘기해야 할까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08년 7월 <조선일보> 주필을 지낸 류근일씨는 “‘1150만 표’로 돌아가야”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정국 대처에 대해 충고하는 내용의 이 글에는 “정치의 1장 1절은 적군이 누구이고 아군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분간하는 것이다. 나를 죽이려고 하는 자들이 누구이며, 나를 살리려고 하는 자들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적을 ‘최소’로 고립시키고, 내 편을 ‘최대’로 엮어야 한다.” “그를 찍지 않은 850만 표의 일부 ‘골수’를 의식하지 말고, 그를 찍었던 1150만 표의 마음을 다시 사야 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개인적으로 이 칼럼을 읽고 상당히 놀랐다. 일반 정치인도 아닌 대통령에게 선거 때 그에게 투표하지 않은 국민을, 그것도 850만명이나 되는 국민을 ‘의식’도 하지 말라는 내용도 충격적이었지만,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을 ‘적’이라고까지 표현한 데에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의 극단적인 견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후 우리 사회 일부 구성원들의 태도, 또한 정부의 정책을 보면서 이러한 생각이 단지 한 사람의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적으로 취급하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더라도, 똑같은 국민임에도 다른 사람들의 절박한 어려움에 아예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서 농성중인 김진숙이나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등록금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면서 촛불집회를 연 대학생들에게 보이는 모습이 바로 그렇다.

경찰은 ‘희망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에 찾아간 사람들에게 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물론 경찰의 입장에서는 실정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겠다는 것이겠지만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농성을 하는 노동자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에게 소환장을 들이미는 것이 과연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일까.

한진중공업 사태에 대해 조남호 회장을 불러 경위를 따지겠다고 기세등등했던 여당 국회의원들은 막상 청문회가 열리자 전원 불참했다. 노사가 합의했다는 이유를 들고 있지만 애초에 문제가 된 정리해고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국회의장을 지낸 김형오 의원은 “왜 사주나 최고경영진이 책임지지 않고 노동자만 대량해고하느냐는 점을 분명히 따지고 싶다”고 말했지만, 정작 대량해고된 노동자들은 전혀 구제받지 못했는데도 더 이상 말이 없다. 정리해고된 사람들이 우리들은 국민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답할 것인가.

최근 <조선일보> 이현우 기자는 기명칼럼에서, 등록금을 낮춰주면 “학생들은 ‘시위했더니 반값으로 낮춰주더라’면서 다시 반값을 요구할 것이다. 그때 정치권과 교육행정 당국은 어떤 논리로 이미 ‘떼’의 힘을 알게 된 학생들의 주장을 반박할 것인가?” “오히려 염치를 잃고 모든 것을 ‘떼의 힘’에 의존하려는 무책임한 사고만 키워줄 수 있다”고 썼다. 정치나 사회문제에 지나치게 관심이 없다고 비판을 받기까지 하는 젊은 세대가 오죽했으면 거리로 나섰겠는가. 다른 것도 아닌 학교에 낼 돈 때문에 부모님께 죄송스럽다고 눈물을 흘리는 대학생들에게 기성세대로서 미안함을 느끼지는 못할망정 떼쓰지 말라는 얘기를 해야 할까.

경찰로부터 소환장을 받은 희망버스 탑승자들은 대부분 한진중공업이나 김진숙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다. 어려움에 처한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위해서 불원천리 달려가는 행동과, 같은 국민에게 ‘적군’이라고 하거나 ‘떼쓰지 말라’고 하는 행동.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전자를 보고 배우라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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