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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7.05 18:56 수정 : 2011.07.05 18:56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국경없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디브이디를 구입하는 세상에서
지역코드 규제하는 것은 불필요

제품의 유통채널이 바뀌면 유통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구매하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통용되는 규칙도 바뀌기 때문이다. 일례로 80/20 법칙을 들 수 있다. 레코드가게에서 음반을 진열해놓고 팔던 시절에는 20%의 히트앨범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했다. 하지만 아마존이나 아이튠스 같은 온라인 유통채널이 등장하면서 80/20 법칙은 성립하지 않게 됐다.

음반을 쌓아둘 물리적 공간이 필요 없는 온라인매장에선 1년에 한두장씩 팔리는 골수팬들의 음반들이 오히려 효자상품이다. 이들이 전체 매출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른바 ‘롱테일 법칙’이 그것이다. 이젠 음반업체가 히트상품에만 애정을 쏟지 말고, 소수의 기호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같은 이유로, 디브이디(DVD) 유통방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디브이디 지역코드를 없애라고 제안하고 싶다. ‘디브이디 지역코드’란 영화배급사가 지역마다 디브이디 출시 날짜나 디브이디 가격, 영화 콘텐츠 등에 차이를 두기 위해 만들어놓은 1부터 8까지의 숫자다. 미국 디브이디복제규제연합이 디브이디 플레이어 제조사에 요청해 만들어진 이 코드는 미국은 1, 유럽은 2, 한국은 3 같은 식의 숫자가 부여돼 있다. 즉 우리나라 디브이디 플레이어는 지역코드가 3번인 디브이디만 재생할 수 있도록 제조됐다.

왜 영화배급사가 이런 규제를 만들어 놓았을까? 디브이디를 싸게 팔아야만 하는 나라에선 싸게 팔더라도, 비싸게 팔 수 있는 나라에선 높은 가격에 팔려는 조처다. 또 영화를 개봉한 지 수개월 안에 디브이디를 출시해야 효과적이기 때문에, 영화 개봉 일정에 맞춰 디브이디 출시를 하기 위해서다. 미국에선 개봉하고 디브이디 출시까지 끝난 영화가 한국에선 아직 개봉도 안 됐다면, 우리 관객들이 영화를 안 보고 디브이디를 구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 2∼3년 전이라면 효과적인 규제였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디브이디를 디브이디 플레이어로만 보지 않고, 컴퓨터로 보거나 아이패드 같은 태블릿피시에서 본다. 또 아마존 같은 국경 없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디브이디를 구입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과연 물리적인 ‘지역’이 무슨 의미일까? 개봉부터 디브이디 출시까지 영화라는 제품 수명이 수개월로 짧아진 오늘날, 디브이디 출시 일정을 위해 지역코드를 활용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오히려 지역코드는 저작권 보호를 막는다. 나라 간의 이동과 왕래가 활발해진 현대사회에서 지역코드는 장애가 된다. 불법적인 ‘어둠의 경로’를 이용하지 않고 정품 디브이디를 구매하려는 행위는 마땅히 격려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소위 신자유주의자들이 떠드는 자유무역에도 위배되는 구식 제도다. 공정거래 위반이다. 요즘처럼 이민자와 유학생이 많은 시대에, 지역코드는 그들이 자국 문화를 향유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 아프리카 유학생이 미국에서 자국 영화를 보기 어려워서야 되겠는가!

사실상 간단한 조처만으로 지역코드에 상관없이 재생되도록 우리집 디브이디 플레이어를 개조할 수 있다. 아예 코드에 상관없이 재생되는 디브이디 플레이어가 이미 나오기도 했다. 디브이디 지역코드는 사실상 실효성도 없다는 얘기다.

미국 영화배급사에 건의할 문제를 한국 신문에서 떠드는 것은 그들이 태블릿피시 시대에 걸맞게 지역코드 제도를 없앨 만큼 명석하지 않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또 우리나라 디브이디 플레이어 제작사들이 소비자들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이 문제를 공론화해주길 바란다. 디브이디 플레이어 제조사 1, 2위 업체가 바로 우리 기업 아닌가! 미국이 만든 국제표준을 한국이 명징한 논리로 없애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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