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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7.06 18:52 수정 : 2011.07.06 18:52

황광우 작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지금
언제 침공할지 모르는 폭력 앞에
저 크레인 위에서 떨고 있다

며칠 전 어느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탈북 청소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목선을 타고 함경남도 신포시를 출발하여 강원도 속초 앞바다에 도착한 탈북 가족. 지금 어머니는 삼성전자 하청업체에 다니고, 아버지는 용접공으로 일하고 있다. 청소년은 북한에서 옥수수를 먹고 살았는데 이제 끼니 걱정은 하지 않게 되었단다. 어머니는 매일 밤 10시까지 하청업체의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지만 매달 월급 받는 기쁨으로 산다고 한다. 신문에서나 듣던 탈북자의 삶을 가까이서 대하노라니 북한 주민들의 고달픈 삶이 새삼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하여 “고요한 밤에 홀로 앉으면 남북에서 헐벗고 굶주리는 동포들의 원망스런 모습이 내 앞에 나타나는 것도 같았다”고 김구 선생은 예견하였던 것인가?

지금 남한의 한 여성 노동자는 바람만 불어도 휘청이는, 잠도 잘 수 없는, 창공 위의 크레인에서 183일간 사투하고 있다. 그곳 85호 크레인은 8년 전 김주익 노동자가 똑같은 싸움을 하다 죽은 곳이다. 2003년 9월9일 그 크레인에서 김주익은 이런 유서를 남겼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무엇 하나 해준 것 없는데, 뭐라 할 말이 없다. 아이들에게 휠리스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야, 부디 건강하게 살기 바란다.”

김진숙은 그때 많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굵은 눈물을 뿌리게 하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민주노조 하지 말 걸 그랬습니다. 노예가 품었던 인간의 꿈. 그 꿈을 포기해서 김주익 동지가, 그 천금 같은 사람이 되돌아올 수 있다면, 그 억센 어깨를, 그 순박하던 웃음을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다시 볼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습니다.” 8년이 지난 오늘 김진숙은 바로 그 크레인 위에서 더는 노예로 살 수 없다며, 정리해고를 철회하라며 건곤일척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민주주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인간 존엄이라고 답한다. 독재자의 총칼을 향해 겁없이 대들었던 지난날을 돌아보면,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길 원한다”고 우리는 외쳤는데,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는 자존이다. 과연 대한민국에 민주주의는 살아있는가? 정녕 대한민국에 인간의 존엄이 있는 것인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지금 부산 바닷가 한 조선소의 크레인 위에서 언제 침공할지 모르는 폭력 앞에 떨고 있다.

오늘내일 금방 사고가 날 것만 같다. 곧 특공대라도 투입하여 김진숙의 외로운 투쟁을 박살낼 태세였다. 7월5일 오전 11명의 노동자가 불법 연행되어 실려 갔고, 전에 없던 철조망이 공장의 온 벽을 휘감고 있었으며, 회사 근처에선 전투경찰들이 삼엄한 경비를 하고 있었다. 무엇이 유혈사태를 부르는가? 사람들마다 견해는 다르겠으나, 나는 지난 한진중공업 회장 조남호 청문회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조직적으로 불참한 데 사태의 일단이 있다고 본다. 나는 한나라당의 당 대표 홍준표씨에게 정중하게 묻는다.

국회의원은 법을 만드는 사람이기 이전에 민중의 호민관이 아닌가요? 만일 당신이, 국민의 정당한 요구를 특유의 몽니로 묵살해온 엠비와 조금이라도 다르다면, 저 크레인 위에서 183일 동안 떨고 있는 여성 노동자 김진숙에게 진정 어린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만일 경찰이 크레인 위의 노동자들을 폭력으로 진압한다면, 만일 그런 비극이 우리의 눈앞에서 전개된다면, 더는 알을 낳지 못하여 폐닭이 되는 양계장의 닭과 남한의 노동자가 다른 것이 무엇인가요? 그러고도 북한의 인권을 운위할 자격이 한나라당에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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