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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7.13 19:05 수정 : 2011.07.13 19:05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문제의 긴박성과 심각성에 비해
한국의 지식사회, 특히 언론의
관심도는 한심할 만큼 저조하다

언제 다시 기회가 있을지 모르지만, 이 지면과 일단 작별한다. 그동안 <한겨레>가 귀중한 지면을 나 같은 인간에게 제공해준 것에 고맙다는 말과 함께 별로 좋은 글을 쓰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책상서랍을 뒤적여 보니까 <한겨레>에 내가 글을 처음 쓴 것은 1994년 7월9일치 ‘한겨레 논단’이었다. 꾸준히 쓴 게 아니라 어쩌다 간헐적으로 써왔기 때문에 전체 분량은 얼마 안 되지만, 아무튼 인연은 꽤 오래된 것 같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것은 지금 이 글이 내가 처음으로 <한겨레>에 썼던 글과 그 논조가 조금도 다르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17년 전 ‘장기적 비전이 없는 사회’라는 제목의 글에서 나는 “우리는 지난 수십년 동안 (…) 경제성장을 강박적으로 추구해왔지만, 그 결과는 어이없게도 이 지구상에서 가장 야만적이며, 치유하기 불가능할 만큼 이기심으로 병든 사회의 하나를 갖게 되었다”고 썼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는 ‘장기적 비전’의 결핍에 있다고 말하면서, 당장의 편익과 물질적 풍요를 위해 삶의 장기적이고 근원적인 토대를 무분별하게 훼손할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는 말했다. 매우 상식적인 이야기였다.

지금 유감스럽다고 하는 것은 그러한 기본 상식이 여전히 통하지 않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4대강과 원자력 문제이다. 4대강 공사는 이 나라의 가장 중요한 생태적·농경적·사회적 토대를 돌이킬 수 없이 훼손하는 폭거임이 분명한데도 무소불위의 권력은 그것을 강행해왔고, 우리들은 권력의 폭주를 끝내 막아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아마도 오랫동안 우리는 통한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4대강 문제는 새삼스럽게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원자력은 누군가가 계속해서 말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문제의 긴박성과 심각성에 비해 현재 한국의 지식사회, 특히 언론의 원자력에 대한 문제의식과 관심도가 한심할 만큼 수준이 낮고, 저조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실제로 4대강 공사의 심각한 후유증은 점진적으로 나타날 것이지만, 원자로는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이다. 원전에서는 미량이라도 일상적으로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지만, 체르노빌·후쿠시마 사태와 같은 가공할 재앙도 절대로 남의 일이 아니다. 합리적 사고력으로써 문제를 조금이라도 깊이 본다면 이것은 누구든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다. 원자로는 기계이며, 기계는 인간이 만들고 운영하는 물건이다. 인간은 반드시 실수를 한다. 따라서 사고 발생은 필연적이다. 이것을 부인하고 ‘원자력의 안전성’을 확언하는 것은 인간의 이성적 능력을 비웃는 짓이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지금 세계 최고의 기술선진국이 겪고 있는 묵시록적 재난에 의해서 ‘원자력의 안전성’이라는 것은 날조된 신화이자 완전히 거짓말이라는 게 확연히 입증되었다.

그렇지 않다면 당장의 경제적 손실을 각오하고 유럽 나라들이 원자력 의존 전력체제를 포기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덴마크, 스웨덴 등 탈원전을 선언한 나라들의 공통점은 이들이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사태에서 배워야 할 것을 제대로 배웠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건전한 이성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문제는 후쿠시마와 같은 묵시록적 사태를 보면서도 원자력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진지한 고민이 없는 사회란 과연 어떤 사회인가 하는 것이다. 언론의 책임이 막중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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