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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귀연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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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보장이 제대로 안되는 탓에
저임금 일자리가 만연하게 되고
소득 벌충 위해 노동시간 길어져
지난 13일 새벽 최저임금위원회에서는 노동계 위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사용자위원과 공익위원들만 남아 내년 최저임금 결정안을 통과시켰다. 시간당 4580원. 올해 4320원보다 260원(6.0%) 올랐다. 공익위원 쪽이 중재안으로 내놓았던 금액 중 최소 수준이다. 그나마 경영계가 처음 제시한 30원(0.7%) 인상보다 8배가 넘는 금액과 인상률로 결정되었으니, 사용자 쪽에서 무지하게 양보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까…. 지금 장난하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의 최저임금은 노동자 평균임금의 33%, 중위임금의 41%로, 법정최저임금 제도가 있는 21개국 중 끝에서 넷째이다. 이 기록에는 노동자들을 우대하는 나라들인 북유럽 국가들과 독일 등은 빠져 있다. 이 나라들에서는 최저임금을 법으로 정하지 않고 노사 단체협약에서 결정하기 때문인데, 물론 이렇게 정해지는 최저임금 수준은 매우 높은 편이다.
최저임금 수준은 그나마 나은 순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국에서 실업급여의 평균소득대체율은 1년간 기준 31%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의 평균인 52%에 크게 미달하면서 당당히 끝에서 둘째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낮은 터키·헝가리·폴란드·체코·포르투갈·스페인 등도 모두 낮게는 40%대에서 높게는 70%대로 한국과는 비견할 수가 없다.
실업급여가 보통 이전 임금의 50%로 산정되는데 소득대체율이 왜 이렇게 낮은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것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이 대개 길어야 6개월 정도로 매우 짧기 때문이다. 장애인이나 고령자이고 10년 이상 근속했다는 어려운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의 최대치가 8개월이다. 장기실업급여 제도는 아예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는 5년 기준 장기실업 때 소득대체율도 구하고 있는데, 이 통계에서 한국의 수치와 순위는 민망해서 차마 인용을 못하겠다.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으면 당장 시급하게 다시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저임금이고 최저임금이고 가릴 형편이 아니다. 곧 실업급여도 끊기고 아무런 소득도 없게 되어 버리니까. 그러므로 법정최저임금은 많은 노동자들에게 최후의 보루다. 시간당 4580원, 한달 내내 법정근로시간대로 일하면 100만원 월급이 될까 말까 한 금액 말이다.
그 결과, 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 중에 한국이 끝 순위가 아니라 앞 순위에서 자랑스러운 1위를 고수하고 있는 항목이 있다. 노동자 평균 노동시간.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건 다른 나라들이 감히 넘보지 못하는 부동의 1위 항목이다. 실업보장이 제대로 안 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해야 하고, 그럴수록 저임금 일자리는 만연하게 되는데, 거기다가 법으로 정해놓은 최저임금도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결과적으로 법정근로시간만 일해서는 제대로 살아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더 오래 많이 일하는 것으로 소득을 벌충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노동시간 항목에서는 당당히 1위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거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거 맞나?
언제부터인가 정치권에서 ‘국격’이라는 말을 잘 쓰고 있는 듯하다. 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개최했을 때 유행했고, 최근 평창 겨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되었을 때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런데 노동연구자로서는 어디 가서 한국의 국격을 얘기하기에는 참으로 부끄러울 뿐이다.
많이도 안 바란다. 국내총생산 수준에 걸맞게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중에서 중간만이라도 하자. 안 그러려면 어울리지도 않는 ‘국격’ 얘기는 꺼내지도 말든지.
장귀연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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