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도입될 감단직 근로자의
최저임금 전면 적용을 앞두고
이들의 해고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정치는 모리배나 하는 거지….”
식민지 지배, 분단과 이념대립의 과잉, 이런 이지러진 근대를 통과하다 보니 한국 사회에선 이런 소시민적인 정치냉소주의가 팽배한 적이 있었다. 지나친 냉소는 우울증의 한 징후라던가. 하기는 아마도 ‘고단한 근대화’ 속에 우리 사회가 집단 우울증을 앓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역동성이라니!
압축적인 산업화와 민주화에 대한 자긍심과 함께 이런 상흔도 대체로 극복되어가는 듯싶다. 시비가 엇갈릴 때 치열한 당사자들을 “너무 정치적”이라며 슬며시 양비론 뒤로 몸을 사리는 ‘탈정치의 정치’가 여전히 기승하기도 하지만, 그건 아마도 차이를 아우르는 사회적 훈련이랄까 문화 인프라가 아직은 부실하다는 반증 정도가 아닐는지.
그리하여 바야흐로 일상에서의 시민참여, 내 주변에 대한 책임의식을 강조하는 ‘생활정치의 담론’이 확대되고 있다. 때로 우회하고 때로 비약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일상 속에 뿌리내려가는 과정이리라. 그런데 등잔 밑이 어두운 것일까. 가족의 일상과 매우 밀접한 내 아파트 경비아저씨의 근무환경에 대해서는? 내 관리비 걱정뿐, 대부분이 고령인 그들의 24시간 맞교대에 대해서 우리들의 ‘생활정치’는?
아파트 경비원들은 대부분 한달 90여만원을 받으면서 설날·추석 같은 명절 구분도 없이 1년 내내 24시간 맞교대 방식으로 일한다. 일부 단지에서 새벽 4~5시간의 취침을 허용하면서 이를 휴게시간으로 간주한다지만, 노동법상 휴게시간은 사용자의 통제를 벗어나 자유로운 장소 이동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랬다가는 바로 목이 날아갈 판이다. 불 켜진 경비실 의자에 앉아 청하는 토막잠이 휴게시간이라니, 편법에 불과한 셈이다.
우리의 근로기준법은 이들을 비롯하여 각종 건물의 경비원, 물품감시원, 전기·보일러 등 기계수리원들을 ‘감시적·단속적 근로자’(감단직 근로자)로 규정하고, 정신적 긴장이나 육체적 피로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유로 근로시간 상한 규제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의 92% 이상이, 특히 아파트 경비원의 경우는 98% 이상이 24시간 맞교대를 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4시간 맞교대는 신체리듬에 큰 무리가 가서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사라진 지 오래다. 우리나라에서도 소방방재청이 2008년부터 3교대제(12시간씩 이틀 근무 후 하루 휴식)를 전면 도입하기 위해 인력을 충원하는 등 24시간 맞교대제가 없어지는 추세라고 한다. 그런데도 단순업무라는 이유로 감단직 근로자에게는 여전히 24시간 맞교대를 요구하고 있다.
대다수가 70살 안팎인 이들은 고유업무와 관계없이 순찰, 차량 단속, 쓰레기 무단투기 단속에, 자전거가 없어져도, 주차된 차에 문제가 생겨도 주민들 불만에 시달린다. 때로 젊은 입주자들의 막말에도 ‘친절 모드’를 견지하려면 ‘감정노동의 강도’ 역시 만만치 않다. 충분한 개인연금이나 사회적 노후보장 없이 노년을 맞이한 이들로서는 24시간 맞교대의 일자리나마 안정적이었으면 좋겠는데, 관리감독이 용이하다는 이유로 대부분 용역회사를 통해 이들을 고용하고는, 가구당 몇천원의 경비절감을 이유로 툭하면 감원 위협을 한다. 실제로 내년부터 도입될 감단직 근로자의 최저임금 전면 적용을 앞두고 이들의 해고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그러니 24시간 맞교대에 대한 불만을 제기할 계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건 입주자들의 몫이 아닐까. 내 집, 내 일터 빌딩에서 벌어지는 이런 행태에 자괴감을 느끼는 것, 책임있게 나서는 것, 여기서부터 건강한 생활정치, 나아가 ‘격조있는 여의도정치’도 시작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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