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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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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그 마을 사람들은
녹산의 억새 마디를 가지고
그해에 올 태풍을 짐작하곤 했다
내가 사는 섬의 장촌이라는 마을에는 녹산이라는 곳이 있다. 사슴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지명으로 억새밭이 아주 아름답다. 앉아 있다 보면 눕고 싶어지고 누워 있다 보면 스르르 잠이 드는 곳이니 땅의 기운도 좋을 것이다. 예전에 인어가 나타났다는 곳이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그 마을 사람들은 녹산의 억새를 가지고 여름과 가을에 올 태풍을 짐작하곤 했다. 봄철에 억새를 만져보면 평소엔 없던 마디가 생겨 있곤 하는데 그 수만큼 태풍이 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억새가 기후의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리고 새로운 마디를 만들어 태풍에 대비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도 그 방법을 쓰는 사람이 있으니 맞히는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기상청 쪽에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 정도면 기상 관측하는 슈퍼컴퓨터보다 낫다.
이런 능력, 사람에게도 있었다.
항해를 하다 보면 안개를 만나기도 한다. 바다에서는 파도보다 더 무서운 게 안개이다. 순식간에 방향이 헷갈린다. 닻을 놓고 기다려야 하지만 수심이 깊으면 그것도 소용없다. 조난당하기 십상이다. 나침반도 안 가지고 다녔던 예전 노인들은 이렇게 했다.
물때와 시간을 확인한 다음 물의 흐름을 살핀다. 이를테면, 세물이고 오후 두시인데 물이 저쪽으로 흘러간다면 우리 섬은 이쪽이다, 해서 찾아갔다. 거의 맞았다. ‘히끼 본다’는 표현도 있었다. 히끼는 바다 물벌레를 총칭하는 말이다. 노인들은 그 애들의 미세한 움직임을 보고 주변에 어떤 고기가 있는가도 예측해 내곤 했다.
지금 어부들은 그런 능력 없다. 노인들은 은퇴를 했거나 돌아들 가셨고 그다음 세대는 모두 첨단기계를 사용한다. 아주 작은 배도 위성항법장치(GPS)를 가지고 있다. 위성을 통해 배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수심 체크도 된다. 조금 더 큰 배들은 레이더도 가지고 있다. 이제 선장들은 푸른 바닷물을 들여다보는 대신 계기판 화면을 들여다본다.
가히 우주적이라 할 수 있는데 덕분에 인간의 감각은 감퇴된다. 듣자니 지난 2004년 인도네시아 지진해일 때 근처에 살던 원시부족들은 본능적으로 해일을 감지하고 모두 산 위로 피신을 했단다. 야생동물들도 마찬가지. 인류는 지난 350만년 동안 냄새를 맡고 별을 보고 바람을 느끼며 살아왔던 종족이다. 당연히 그런 능력이 있었을 것이다. 공연히 아쉽다.
감각능력만 떨어지는 게 아니다. 나는 대중교통 옹호론자이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바뀌었다. 휴대전화와 엠피3 소음 때문이다. 끊임없는 통화소리와 빠른 박자의 애매한 전자음향 때문에 금방 피곤해지고 짜증이 난다.
그 기계들을 붙들고 있는 이들의 특징 하나는 가만히 있는 시간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버스나 기차를 타면 적잖은 시간 동안 지루하기 마련이다. 방에서 홀로 뒹굴고 있다면 만화책이라도 볼 텐데 그것도 없다. 그런데 이 시간, 꼭 필요하다. 어쩔 수 없이 자신과 만나기 때문이다. 그 시간이 찾아오면, 자신이 했던 실수가 생각나고 부끄러웠던 상황이 떠오른다. 불편하지만 성찰의 시간이다. 풍경을 바라본다면 관찰의 시간이 된다.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이 떠오르면 남을 생각해보는 시간도 된다. 휴대전화와 엠피3 때문에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하고 산다.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단 1분도 심심한 것을 못 참는 세상이다. 내비게이션도 우리를 길도 못 찾는 바보로 만들고 있다. 내가 아직도 내비게이션을 달지 않는 이유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길이 워낙 많아지고 복잡해져서 갈수록 자신이 없기도 하다. 아무튼, 장촌마을 선배 한 분이 올봄에 억새를 만져보니 세 마디가 더 생겼다고 했다. 태풍 세 개가 온다는 소리이니 한번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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