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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7.24 19:08 수정 : 2011.07.25 13:53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연합 수준의 세부 디자인은 달라도
거대한 오픈 플랫폼·선거법 개혁의
디자인에는 즉시 함께해야 한다

이런 걸 두고 데자뷔 현상이라 하는 걸까? 희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의 끝에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드디어 밝은 모습을 드러냈다. 진보정치의 세력화에 온몸으로 매진해온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가 진보의 독자성을 지키면서도 야권의 단일한 무대에서 치러지는 국민경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2002년 대선을 한참 앞두고 절망만이 엄습하던 그때도 그랬다.

난 당시 존재감이 약했던 노무현 의원이 <말>지에 실린 글에서 시민의 잠재된 힘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드러낼 때 그에게 주목하자고 주변에 말하기 시작했다. 또한 당시 민주노동당의 노회찬 부대표가 <말>지에서 국민경선을 제안하였을 때 그의 지혜에 놀란 기억이 생생하다. 오늘날 대선을 1년 반 앞두고 ‘문재인 현상’이 시작되었다. 노회찬은 야권의 단일한 국민경선을 얼마 전 제안한 바 있다. 2001년의 부활이다. 단, 2.0의 버전으로 말이다. 이 의미를 깊이 이해하는 자들이 2011년 이후 새로운 10년을 주도할 것이다.

더 길게 거슬러 올라가면 문재인과 노회찬의 운명은 전태일이 제기한 ‘사람 사는 세상’에의 꿈에서 비롯된다. 80년대 노무현과 문재인은 선구적인 노동 변호사였고 노회찬은 노동운동의 새 장을 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전지구적 시장만능주의 광풍이 그들을 갈라놓았다. 2011년 현재 여전히 극도로 힘의 균형과 정의가 일그러진 천민자본주의 현실은 노회찬과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 그리고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에게 야권 정당 및 시민운동과의 연대를 절실히 요구하게 만들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등은 결국 자신들의 삶의 뿌리인 노동을 강화시키지 않고는 어떤 민주와 복지의 미래도 없음을 절감하며 희망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2001년의 노무현과 노회찬과 달리 2011년 문재인과 노회찬은 참여정부의 성공과 좌절을 극복하면서 노동의 관점에서 민주와 복지 어젠다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문재인 변호사
2001년 노사모는 훌륭한 역할을 수행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이지 민주주의를 위한 ‘민사모’나 노동을 위한 ‘노사모’는 아니었다. 2011년 문사모(문재인을 사랑하는 모임)는 2001년에서 더 나아가 진보적 민주주의의 영구적 혁신을 위한 백만민란이나 시민정치행동 등의 시민정치운동과 함께 성장해 나갈 것이다. 대통령 후보 여부를 떠나서 문재인과 노회찬은 민주공화국을 위한 새로운 차원의 시민정치운동의 흐름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당시 노회찬 등이 선구적으로 제시했던 국민경선은 민주당의 예비경선으로 구현되면서 승리의 핵심 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그건 민주당 내의 경선이란 점에서 반쪽짜리 성공이었다. 그리고 노무현을 당선시킨 이후 민주당은 우경화되거나 분열하고 말았다. 다른 한편으로 진보정당들은 대중적 진보정당이 아니라 활동가의 정당으로 위축되거나 분열하고 말았다. 2011년 지금 노회찬은 국민경선을 제안하고 있다. 문재인과 노회찬, 그리고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은 이후 정당 발전의 전망이나 연합 수준의 세부 디자인은 서로 다르더라도 이 거대한 오픈 플랫폼과 선거법 개혁의 디자인에는 즉시 함께해야 한다.

문재인은 최근 회고록에서 ‘물과 물이 만나 바다를 이루는 법’을 이야기한다. 노회찬은 거친 풍랑을 헤쳐 나가는 유연하고 깊은 지혜를 가진 선장의 모습을 진보의 모델로 강조해왔다. 민주공화국을 꿈꾸는 세력들이 서로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역사의 큰 물줄기를 이뤄 정권의 교체와 더 나아가 자의적 지배체제의 교체를 함께 이루어 나갔으면 한다. 그것이 문재인과 노회찬의 운명이자 우리 모두의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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