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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7.26 19:04 수정 : 2011.07.26 19:04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종 다양성이 자연의 생존력이듯
다문화는 그 자체로 축복이라는
개념이 북유럽으로 퍼져나갔다

계산신경과학회 연례회의 참석차 스웨덴 스톡홀름에 왔다. 노벨상을 수여하는 나라이기에 변방 과학자에겐 각별한 국가여서 그런지, 비행기에 오르면서부터 다소 들떠 있었다. 그러나 여행자로서의 기쁨도 잠시, 스톡홀름에 도착한 첫날, 옆 나라 노르웨이에서 기독교 극우주의자의 테러로 100명 가까운 청소년들이 죽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평화와 화해의 상징인 이곳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우리에게 스웨덴은 아바나 볼보, 혹은 이케아 정도로 기억되는 나라지만,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균등하게 존중받으며, 다문화·다인종에 대한 평등주의가 보편화된 나라다.

그러나 이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스웨덴은 한때 유럽 제국주의의 정신적 메카였으며, 그 한복판에는 스웨덴이 낳은 가장 유명한 식물학자 칼 폰 린네가 있다. 그는 1730년대 스톡홀름 근교에 있는 웁살라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한 뒤, 동식물학 체계의 표본이 된 <자연의 체계>(1735)를 저술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린네가 사용한 종과 속의 이명법은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분류하는 체계를 만든 린네는 유럽이 제국주의로 팽창하는 길을 열어주게 된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린네의 자연체계법을 바탕으로 과학탐사대를 조직했고, 그들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가 동식물을 채집해 본국으로 보냈다. 또 그곳의 원주민들을 관찰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일도 빼먹지 않았다. 18~19세기, 식민지에서 온 온갖 동식물과 원주민들을 전시했던 식물원과 동물원이 탄생한 것도 바로 그 무렵이다.

린네의 체계 안에선 인간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는 네발 달린 짐승 중 ‘호모’(Homo)라는 카테고리에 분류되었고, 백색 유럽인, 적색 아메리카인, 황색 아시아인, 검은색 아프리카인이라는 하위 카테고리 안에 나뉘고 분류되었다.

린네의 동식물 분류체계는 유럽 제국주의와 인종주의의 과학적 토대가 되었지만, 이에 대한 가장 깊은 반성이 이루어진 곳도 바로 이곳 스웨덴이다. 종의 다양성이 자연의 생존력이듯, 인간의 다문화는 그 자체로 축복이라는 개념이 스웨덴을 중심으로 노르웨이·핀란드·덴마크로 퍼져나갔다. 린네의 학문적 고향인 웁살라대학이 지금은 세계 평화와 분쟁을 연구하고 평등주의자들을 배출하는 데 가장 헌신적인 곳이라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스웨덴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웃나라 노르웨이에서 왜 불행한 테러가 발생했을까? 불행하게도 ‘관용의 반도’에도 극우주의자는 있는 법. 이교도를 배척하고 다문화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백인우월주의자가 노동당이 주최하는 청소년캠프에서 테러를 저지른 것이다.

그가 꿈꾸는 낙원으로 ‘단일문화를 유지하고 가정중심주의가 남아 있는 곳’이라며 우리나라를 들먹였다고 하니 부끄럽고 가슴 아프다.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타 문화에 배타적인 우리가 스칸디나비아반도의 극우주의자가 꿈꾸는 지상낙원이었다니 말이다.


“고향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허약한 미숙아다. 모든 곳을 고향이라 여기는 사람은 이미 상당한 정신의 소유자다. 하지만 전세계를 타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라고 성 빅토르 후고가 말했다 한다.

이방인이 되는 것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 되는 것임을 자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과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한반도까지의 거리는 2만㎞. 어느 극우주의자가 꿈꾸는 천국까지의 거리이면서 동시에 어느 평등주의자가 꿈꾸는 이상향까지의 거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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