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7.31 19:31
수정 : 2011.07.31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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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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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금지 조처 내린 교육감들을
아이히만에 비유한 놀라운 발상
아렌트가 무덤에서 걸어나올라
체벌금지 조처가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상당수 언론매체에서는 이 조처로 교권이 실추되고 교육 현장이 붕괴했다고 하면서 비판적인 사설을 냈다. 애초부터 체벌 금지에 반대했던 교총은 교실위기, 교권추락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논평을 했다. 심지어 체벌금지 조처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지적하는 것을 넘어 “악”(惡)으로 매도하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7월22일치 <문화일보> 김종호 논설위원의 시론이 대표적인 예다.
김 위원은 체벌금지 조처를 내린 교육감들을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아돌프 아이히만에 견주는 놀라운 발상을 보인다. 600만명의 생명을 앗아간 인류에 대한 범죄와 학생들을 때리지 말고 가르치자는, 다른 나라에서는 상식으로 통하는 주장을 어떻게 같은 평면에 놓고 얘기할 수 있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체벌을 금지한 교육감들을 “지독한 악행의 장본인”, “괴물”이라고 거리낌없이 불러대는 데야 할 말이 없다. 아이히만에 대해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내놓은 한나 아렌트의 이론을 교육 현장에서 폭력을 금지한 체벌금지 조처에 적용하다니. 아렌트가 알면 무덤에서 걸어 나올 일이다.
교육 현장의 붕괴가 정말 체벌금지 조처로 인한 것인지, 그렇다면 조처가 시행되기 전인 재작년까지는 우리 교육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교권이 확립되어 있었는지 지극히 의문이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과연 기성세대가 아이들에게 매를 들 자격이 있는지는 더욱 의문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세계 어느 나라의 아이들보다 더 오래 교실에 붙잡혀 있어야 한다. 새벽같이 학교에 가서 수업, 방과후 수업, 자율학습을 하다가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귀가를 한다. 더 큰 문제는 규정과 현실의 괴리다. 나는 가끔 우리 교육과학기술부가 대외적으로 각급 학교의 수업시간이나 방학기간을 발표할 때 무엇이라고 하는지 궁금하다. 방학기간은 한 달 이상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다시 가방을 싸들고 자율학습을 하러 학교에 가야 한다. 차라리 방학을 없애고 말지, 말로는 방학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매일 등교를 해야 한다면 괜히 아이들에게 분열적인 상황만 조성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평일에 학교에 붙잡혀 있던 아이들은 주말을 학원에서 보내야 한다. 그리고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학원에서는 내놓고 매를 때린다. 성적이 좋지 않아서 학원 원장으로부터 100대를 맞아야 하는데 하루에 다 맞을 수 없어서 열흘 동안 하루에 10대씩 맞았다는 등의 이야기는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받는 교육의 질은 어떤가. 각자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수업을 듣고 성적에 상관없이 격려와 칭찬을 듣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규교육을 마치면 독자적으로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교양을 갖게 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우리 교육 현실을 안다면 누구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체벌금지 조처 이전까지, 건국 후 60년간 우리는 매를 때려가며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그 기간 동안 우리가 만든 학교의 모습은 성적만능주의가 판을 치고, 공부를 잘하는 소수의 학생들을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은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하는 치열한 경쟁의 장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찌 보면 희망을 갖지 못하는 아이들 일부가 교사들의 말을 듣지 않고 탈선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당연할지 모른다.
가르치는 일의 기본은 모범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성세대가 교육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매를 들 자격이 있을까. 방학에도 지친 얼굴로 학교로 학원으로 다니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정작 매를 맞아야 하는 사람들은 우리 어른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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