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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8.03 18:53 수정 : 2011.08.03 18:53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그 거룩함은 그냥 나오지 않았다
시민적 용기와 관용의 가르침이
지배적인 분위기였기에 가능했다

독일인 친구 부부는 여름이면 노르웨이로 간다고 했다. 많은 중부유럽인들이 더 많은 태양빛을 찾아 남쪽으로 휴가를 떠나지만 그들에게는 노르웨이의 깊은 숲이야말로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이었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노르웨이는 그토록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나라였기에 극우 테러가 이 나라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이었다. 2011년 여름은 노르웨이 역사에서 비극적인 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사실 2000년대 들어 북유럽 극우세력의 약진은 걱정거리로 등장했다. 덴마크 인민당, 노르웨이 진보당, 스웨덴 민주당, 진정한 핀란드인당 등 극우정당들은 선거 때마다 득표율을 늘려가 20%를 넘기기도 한다. 유럽 극우파는 백인이 아닌 모두에게 적대적이지만, 이슬람교도야말로 이들의 집중적 공격 대상이다. 유럽에서 이슬람교도는 과거의 유럽 유대인 같은 배제와 차별의 대상, 아감벤의 용어를 빌리자면 ‘호모 사케르’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필연적 현상이다. 유럽인들이 2차 대전 후 각국 차원에서는 부분적으로 과거사 청산을 했다고 하지만, 이는 백인이 백인에게, 혹은 독일인이 유대인에게 저지른 가해에 대한 반성의 테두리를 벗어난 적이 없다. 유럽 백인들이 제국주의와 그로 인해 초래된 세계대전, 그리고 비백인에게 저지른 인종주의의 역사적 죄악에 대해 비유럽 세계에 과거사 정리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은 시민교육, 역사교육의 맹점이었다. 유럽인들의 세계사 인식과 다른 문명권 구성원들에 대한 인식에는 큰 공백이 있었던 것이다. 이 블랙홀이 세계화 시대의 인구이동, 경제상황의 악화와 함께 작용하여 인종주의의 새로운 발호를 낳았다.

브레이비크라는 테러범의 성장 배경과 경험 등을 놓고 많은 분석이 나온다. 그의 성장기 체험에는 희대의 괴물을 낳을 만한 여건이 별로 없었다는 데서 일반론적 분석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기도 한다. 한 사람의 생각과 감정의 여정 하나하나를 따라가며 예측하고 인간 심성 형성의 오묘한 비밀을 궁극에 이르기까지 밝혀내는 일은 어떤 과학도 하지 못한다. 자먀틴의 <우리들> 같은 작품도 그저 인간의 외적 행동에 대한 통제를 시도한 체제에 관한 공상소설일 뿐이다. 극우 인종주의자 브레이비크는 극우 인종주의자 히틀러의 군대를 막아낸 막스 마누스를 존경한다 했다. 나치즘에 맞선 용사의 생애에 대한 존경이 그에게서는 극우주의 테러 성향과 결부된 것이었으니.

인간 세상에는 사회적으로 더 이상의 노력이 필요 없는 완성된 어떤 상태는 없다는 것을 다시 실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떠한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 인간이, 사회가 어떻게 이를 넘어서느냐이다. 2011년 7월22일 우퇴위아 섬에 있었지만 참극을 면한 노르웨이 노동당 소속 젊은 여성정치인 스티네 호헤임은 <시엔엔> 방송 인터뷰(7월23일)에서 “단 한 사람이 이렇게 큰 증오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랑은 얼마나 클지 상상해 보세요”라고 말했다. 비극이 일어난 뒤 자기 친구인 헬레 간네스타라는 평범한 여성이 한 말을 인용한 것이었다. 스티네와 헬레는 브레이비크와 같은 사회, 같은 세대 출신이다. 이 여성들의 발언은 거룩함의 경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거룩함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시민적 용기와 관용의 가르침이 지배적이었던 분위기에서만 가능한 말이다. 그리하여 다시, 그래도 사회적 차이가 인간적 차이를 낳는다는 생각으로 돌아오게 된다. 노르웨이의 이 젊은이들은 비극에 인간적으로 대처하면서 성장할 줄 아는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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