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더 내기 바른생활운동본부’
혹은 ‘세금 제대로 내기 어버이연대’
이런 시민단체가 만들어진다면?
한국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다고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흔히 사회적 책무에 앞장서는 명예로운 귀족 혹은 상류층을 지칭하는데, 우리는 삼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친일 경력이 나오거나 좌익 경력이 나오기 때문에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때로는 전장을 내주고 때로는 대리 이념전을 치르며 근대를 헤쳐온 선조들의 고달픔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프랑스어에서 유래하는 이 말은 신분질서나 상류계층을 전제했던 말이어서 요즘 쓰기에 썩 적절한 말은 아닐 수 있다. 다만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가진 만큼 사회적 책무를 다한다는 정도로 이해한다면, 우리가 아직도 내 울타리를 넘는 배려와 의무의 인프라를 복원하지 못했다는 말이 되겠다.
지식경제부 장관이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연봉을 깎아 청년 일자리를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대기업은 환율과 금리, 세금 혜택 등 범사회적 지원을 통해 성장해 왔으니 고액 연봉을 받는 임원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촉구했다고도 볼 수 있다.
성과 평가가 공정하냐는 시비 속에서도 성과주의가 도입된 지난 10여년 사이 임원과 평직원 간 임금격차는 그 전에 비해 크게 벌어져 14배에 이른다고 한다. 또 똑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직원 사이의 임금격차 등 한국의 임금구조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언론은 그가 전부터도 치밀한 정책조율 대신 돌출적 제안으로 마찰을 조장해 왔다고 꼬집었고 재계는 장차관 연봉부터 깎으라고 맞대응하였다. 우리도 깎을 테니 장차관도 깎으라고 했으면 좋았을 것을, 이어서 정규직과 원청회사 직원들이 솔선하여 불합리한 격차를 줄이자고 나서면 좋을 것을.
감세 기조는 완강하게 견지하면서 정부·여당 한쪽에서 반값 등록금에 이어 무상보육을 제안하고 고액 연봉을 깎자는 제안까지 들고나오니 혼란스럽기는 하다. 내년 선거를 겨냥한 ‘모드 전환’이라는 지적도 있다.
여야가 서로 ‘복지 원조’임을 다투는 요즘 상황은 그간의 토건 포퓰리즘과 비교하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복지재정은 국내총생산(GDP)의 9%,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19% 수준인데도, 내년 선거를 의식한 정치권이 재원 마련과 관련한 증세 발언은 여전히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처럼 서로 살피기만 하는 눈치다.
경제학에서는 본래 재정적자를 가르칠 때 선거 전해의 선심행정을 제일 많이 예로 든다. 오죽하면 서구에서도 정치인을 일컬어 ‘냇물도 없는데 다리 놔준다는 사람’이라고 농담하겠는가. 정치권이 나서기 어렵다면 국민들이 나서는 건 어떨까? 이웃들과 진지하게 손익계산 해보면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사교육비 대신 교육복지 세금을, 백수와 비정규직을 오가는 내 아들딸을 위해 실업구제와 직업훈련 비용을, 내 노후를 위해 미리 복지 세금을 내두자고. 경영효율 높아지게 불가피한 산업구조조정을 위한 기금을 적립하자고. 그래서 가진 만큼 세금을 더 내자는 ‘세금 더 내기 바른생활 범국민운동본부’, 혹은 ‘세금 제대로 내기 어버이연대’ 같은 게 만들어진다면? 그 전에 왜곡된 세금구조만 바로잡아도, 그 재원 가지고 할 수 있는 만큼씩 복지를 체득해 나가기만 해도 친서민 행보에 힘이 실리지 않을까. 서로 네 연봉 먼저 깎으라고? 정말? 우선 고액 연봉만큼 세금을 더 내는 건 어떨까. 하기는 다운계약서에 편법 상속, 이런 고위층 탈세 의혹을 생각하면 세금 제대로 내는 것부터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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