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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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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오면 일부러 섬 여행을 해보자
해수욕이나 낚시는 전혀 할 수 없다
하지만 한 번도 못 본 풍경이 찾아온다
지난주 태풍 무이파가 올라오고 있을 때였다. 육지에서 약속이 있던 나는 오후 배를 타러 나갔다가 꼼짝없이 발이 묶이고 말았다. 표가 매진되어 버린 것이다. 나를 빼고도 오륙십명의 관광객이 배를 못 탔다. 다음날부터는 태풍으로 인한 예비특보가 내려져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육지로 나갈 수 있는 마지막 배였던 것이다.
놓친 기차는 아름답다고 했지만 못 탄 배는 야속하기 짝이 없다. 관광객들은 거의 울 지경이었다. 그들의 원망은 이런 내용이었다. 휴가철을 맞아 배가 횟수를 늘려 다녔는데 그날은 평상시처럼 오전 오후 한 차례씩만 다녔다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들 중에는 예약증을 들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항만청 운항관리과로 전화를 했다. 운항관리과 직원 설명으로는, 여객선 증회 신청은 여객선 회사에서 하는데 그날은 증회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척으로도 남아 있는 관광객을 싣기에는 충분하다고 본 모양인데 더하기 빼기만 해보아도 될 것을 판단 착오 해버린 것이다. 그 직원의 설명은 더 이어졌다. 태풍이 온다는 말을 했음에도 섬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많았으며 그들이 마음이 바뀌어 한꺼번에 몰려들어 버렸다는 것.
나는 관광객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표를 사기 전에 태풍에 대한 사전 설명을 들었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는 조금 전 그 배를 타고 이제 막 들어온 부부도 있었다. 그 부부는 섬에 와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은 게 전부라고 탄식했다. 그들은 허탈해하면서 책임성 없는 여객선 회사에 분노했다. 우여곡절 끝에 항구로 나오기는 했지만 나도 그 허술한 시스템을 떠올리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관광객들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은 있다. 사실, 배는 기차나 버스와 다를 바가 없다. 매진되면 못 타는 것이다. 놀고 있는 기차라고 해서 억지로 시동을 걸게 할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섬 여행은 바다 사정이나 태풍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모으는 것이 필수이다. 풍랑이 일면 어떤 배도 뜰 수 없는 게 바다의 기본 아니던가. 설사 평온한 바다라 해도 여객선은 일몰 이후에는 절대 움직일 수 없는 게 현행법이기도 하다.
방송국 일기예보는 너무 포괄적이라서 주의해야 한다. 이번 태풍 오기 직전 어떤 방송에서는 예상되는 파도가 1~5미터라고 나왔다. 이러면 정보로서 가치가 전혀 없다. 다음번 선거에서 정권이 바뀔 확률이 10~90퍼센트라고 하는 것과 같다. 하긴, 세세한 기상 정보보다는 기상 캐스터의 미모와 의상의 선정성에 더 신경을 쓰는 나라이니 뭐 더 할 말 없다.
대신 생활정보 전화 중에 일기예보 안내인 131번을 권한다. 가고자 하는 지역 번호와 함께 누르면 자세한 기상정보를 들을 수 있다. 아무튼 이 정도에서 발상 전환 하나.
태풍에 겁먹고 섬을 빠져나가려고 기를 쓰기보다는 반대로 해보는 것, 이거 의외로 괜찮다. 그러니까 태풍이 오면 일부러 섬 여행을 해보는 것이다. 물론 해수욕이나 낚시 같은 건 전혀 할 수 없다. 하지만 한 번도 못 본 풍경이 찾아온다. 이번에 가거도 방파제를 덮치는 파도를 보셨을 것이다. 태풍 매미 때 우리 마을에서는 방파제 하나가 통째로 없어져 버리기도 했다. 공상과학(SF) 영화의 어떤 특수 효과보다도 박진감 있고 스펙터클하다. 저 도도하고 거대한 바다의 힘을 어디에서 직접 볼 수 있겠는가.
또 있다. 풍랑을 피해 잔뜩 모여든 어선들이 서로 옆구리를 비비는 모습과 왜 섬의 나무는 가지가 한쪽으로만 자라는가를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도시에서 태풍을 보는 것과는 너무 다르다. 식당 주인도 불쌍하게 생각해서 반찬 하나라도 더 준다. 물론 문을 열었을 때에만 가능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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