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8.22 18:53
수정 : 2011.08.22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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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익
서울대 교수·
한국미래발전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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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새로운 이념지표를
설정하고 보수층 교육에 나섰다
그러나 핵심 메시지는 감춰져 있다
<조선일보>가 8월2일부터 매일 연재하다시피 하는 ‘자본주의 4.0’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공생발전’을 들고나오자, 광복절 아침 조선일보는 대통령이 아직 채 읽지도 않은 경축사가 바로 ‘자본주의 4.0’이라는 기사를 1면 머리로 실었다.
‘자본주의 4.0’은 아나톨 칼레츠키의 저서이지만, 조선일보가 그의 저서를 옮기는 것은 아니다. 한달간 수십면을 털어 책 한권을 소개하는 신문이 있을 리 없다. 보수의 싱크탱크이자 정치적 지도부를 자임하는 조선일보가 새로운 이념지표를 설정하고 보수층 교육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시점에 ‘자본주의 4.0’을 전략으로 들고나왔을까?
보수의 눈으로 보자면 지금 우리 사회에는 복지의 ‘광풍’이 불고 있다. 복지란 이 땅에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사회주의 국가의 제도이다. 초기에는 ‘선성장 후복지’로 막을 수 있었고, 후기에는 ‘세계화’, ‘시장 논리’, ‘작은 정부’ 등으로 막아왔다. 특별한 수혜자인 재벌은 물론이고 경기에 목을 매는 중소기업·자영업자들도 성장 논리에 잘 따라 주었다.
무상급식의 지방선거 이후, 이제는 아무리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선전을 해봐도 골수 보수층을 제외한 국민들은 들은 척도 안 한다. 반복지는 가혹한 인상만 주고, 재벌의 독점과 횡포에 질려버린 중산층·서민 지지자들을 설득할 방법이 없다.
더욱이 보수의 핵심 세력이 복지에 대한 ‘수용파’와 ‘거부파’로 분열하고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한국형 복지국가’를 주장하는가 하면, 황우여 원내대표는 반값 등록금과 전면적 무상보육으로 파장을 일으켰다. 반면 극단적 반복지주의자가 된 오세훈 서울시장은 상상 속의 대통령직과 현실 속의 시장직을 모두 거는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복지국가에 대한 보수의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복지 포퓰리즘’ 주장은 잘해봐야 초보적인 네거티브 전략일 뿐이다. 복지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회복하고, 분열하는 보수세력을 다시 하나로 묶을 것인가?
‘자본주의 4.0’이 조선일보의 대안이다.
신자유주의에서 따뜻한 자본주의로의 전환,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적자생존의 잔혹한 시장만능주의에서 사회통합적 시장으로의 전환은 보수에게는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 묘수이다. 적어도 ‘시장’ 아닌가? 지금처럼 기득권자가 전횡할 수는 없지만, 재벌을 통제하고 그들을 길들여야 하지만, 그래도 정권을 잃고 보수가 통째로 침몰하는 것보다는 낫다. 적어도 시장이라면 보수의 무대이니까. 중산층과 서민에게는 ‘우리가 보살펴 주겠다’는 약속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집권하면 ‘오리발’ 내미는 것이야 보수의 특권이다.
정작 조선일보가 쓰지 않은 메시지는 ‘그 대신 복지를 포기하라’는 것이다. 시장을 개혁하면 복지는 안 해도 잘산다. 이것이 거부감을 우려해 조선일보가 말하지 않는 핵심 메시지다. 이 깊은 속을 모르고 이명박 대통령은 ‘공존발전’에서 “복지 포퓰리즘이 국가부도 사태를 낳은 국가들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직설적으로 말해버리고 말았다. 복지가 국가부도를 낳았다는 부정확한 근거까지 들어가면서 말이다.
사회통합적 시장과 사회통합적 복지는 분리불가능하다. 시장에서의 분배와 국가를 통한 재분배는 굵은 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국가체제일 뿐, 이건 하고 저건 안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로미오는 읽되 줄리엣은 안 읽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시장개혁이든 무엇이든 다 하겠는데 복지만은 못 하겠다? 치료불능의 복지공포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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