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8.24 19:32
수정 : 2011.08.24 19:32
이들 세대의 팍팍했던 청춘으로
일군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이건만
이들에게 노후마저 희생하란 걸까
새로 생긴 아파트 앞 아담한 쌈지공원, 푸른 숲의 나무의자가 멋스럽다. 그런데 하릴없는 동네 중늙은이 ‘아저씨’ 네댓명이 대낮부터 소주를 마시고 있다. 시장 가던 ‘아줌마’들이 “아파트 물 흐린다”며 눈살을 찌푸린다.
수명은 늘어나 팔구십까지 산다는데 오십줄에 일찌감치 은퇴당한 ‘아저씨들’은 천덕꾸러기가 되어가고 있다. 남의 편만 들어서 ‘남편’이라고 핀잔하는가 하면, 급기야 시중에는 남자의 삼종지도까지 유포되고 있다. 어려선 마땅히 엄마에게 복종하고, 젊어선 아내에게, 늙어서는 며느리에게 복종해야 한다나. 농담이라지만 편하게 따라 웃어지지 않는다.
하기야 지금 중늙은이 ‘아저씨’가 되어 있는 세대들은 소주로 마음을 달래는 것 외에 다른 기분풀이를 배워볼 기회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전쟁의 참화로 너나없이 못살던 시절, 부모 덕에 잘사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설사 자수성가 끝에 이제 서울 강남 한복판 고층아파트에 산대도 어렵던 시절의 강퍅함과 불안감 때문에 여전히 더 움켜쥐려 하고 누군가에게 베푼다는 것이 주제넘은 것처럼 어색할지도 모르겠다. ‘아줌마들’은 더러 관광버스에서 막춤으로, ‘아저씨들’은 소주판 막걸리판으로 삶의 무게를 달랬던 세대, 이들의 노년이 원숙한 문화소비와 품위있는 감수성으로 보상된다면 좋으련만. 그리하여 이들이 전통 문화산업과 새로운 사회서비스산업의 든든한 내수기반이 되어주면 좋으련만.
이들 세대의 팍팍했던 청춘으로 일군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이지만 대한민국은 아직 이들 세대에게 충만한 노후까지도 희생할 것을 요구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4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고 한다. 최근 한 연구에서는 가구주가 60살 이상인 은퇴가구 중 소득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은퇴빈곤층’이 100만가구가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고령 은퇴가구의 40%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이들 은퇴빈곤층의 평균 자산은 7000만원이지만 주택이나 전월세 보증금 같은 거주 관련 자산이 70%를 넘어서 집을 보유하고도 은퇴빈곤층으로 분류된 가구가 전체의 절반이 넘는 51.7%였다.
부모님이 편안하지 않은데 자식들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아니, 자칫 이것이 나와 우리 아이들의 우울한 미래는 아닐까. 아닌 게 아니라 늘어나는 사교육비가 노후 불안의 원인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러다 보니 ‘평균수명 연장으로 90살 또는 100살 이상까지 사는 것은 축복이 아니다’라는 응답이 43.3%에 이른다고 한다.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라는 응답은 28.7%에 그쳤고, 28.0%는 ‘그저 그렇다’고 답했다.
은퇴빈곤층 기사에는 “무상급식이니 반값 등록금이니 젊은이들 사정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노년층엔 관심이 없다”는 댓글들이 달렸다. 무상급식 논쟁으로 촉발된 국민들의 복지감수성을 반값 등록금을 거쳐 은퇴빈곤층의 노후문제로까지 확대해 나갈 때가 된 것이다.
한편으로 노년층 일자리를 안정화하고 다른 한편으로 연금과 복지를 확충해 가면서 노년의 안정을 개인 부양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의무로 시스템화해 나가는 것, 그것은 젊은 시절의 모험과 창의성을 북돋는 것이기도 하니까.
때마침 기획재정부가 한국개발연구원에 의뢰해 조사한 연구결과도 이를 촉구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 삶의 질 순위는 주요 39개국 중 27위였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의 교육 및 복지 지출은 최하위에 머물렀다. 특히 소득 분배율은 2000년 12위에서 2008년 23위로 떨어졌다.
고령화사회, 노년을 방치하면 아파트 물만 흐려지는가? 사회 전체의 물이 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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