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8.30 19:10
수정 : 2011.08.3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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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귀연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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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도 하고 노조활동도 하고
사람들의 쾌적함을 위해 청소하고
거기서 보람 느끼는 노동자들이다
한 남성 노동자가 고백을 했다. “노동운동을 시작하고 제일 먼저 스스로 깜짝 놀랐던 것이 화장실에서였다. 사업장 화장실에서 서서 볼일을 볼 때 청소하는 여성 노동자가 들어와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태연하게 볼일을 마치고 나갔었다. 노동운동을 하고 노동자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나서야 그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남자화장실에서 마주칠 때 흠칫하게 되더라. 그전에는 청소노동자를 사람으로 인식하지도 못했던 거다. 소변기, 대걸레, 비품 상자 같은 사물이나 다름없었다.”
존재해도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 같은 노동자들이 있다. 사무실, 학교, 공장, 병원, 지하철역, 공항… 우리가 가는 모든 곳에서 종종 청소노동자들을 마주치지만, 그것을 알아채는 경우가 없다. 사람들의 시선은 청소를 위해 구부정하니 굽힌 그들의 등허리를 여과없이 통과할 뿐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심지어 그들을 고용하고 사용하는 사업주들도 이들이 밥을 먹고 허리를 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화장실의 비품 상자에 걸터앉아 도시락을 먹는 여성 청소노동자를 보았다. 화장실은 좁고 냄새가 났다. 칸막이 안에서 볼일을 보고 나왔더니 그녀는 대걸레를 빠는 곳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계단 밑 작은 창고의 문이 반쯤 열려 있는 것을 지나치면서 본 적이 있다. 전구알 하나 매달고 매트를 깔아놓고서 청소노동자 몇몇이 앉아 잡담을 하며 쉬고 있었다. 원래 비품 창고였을 그곳은 아직 그 역할도 하고 있는지 도구함 같은 것에 기대 앉은 아주머니도 있었다. 계단 밑 공간이라 당연히 허리를 펴고 일어설 높이가 되지 않는다. 드나들 때면 몸을 굽혀야 한다.
1990년대 중반 공공시설과 사업장들이 청소노동자들을 용역 고용으로 전환한 뒤 고용안정성과 임금이 가차없이 떨어졌다. 청소 용역업체를 최저입찰로 선정하면서 같은 곳에서 계속 일을 해도 매년 소속 업체 명찰이 바뀌고 임금은 연년이 떨어지는 황당한 사태가 발생했다. 지금도 해마다 최저임금 결정에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노동자들이 이들이다. 임금이 거의 법정 최저임금 수준에 맞춰 결정되기 때문이다. 복리후생은 말할 것도 없다. 화장실에서 밥 먹고 계단 밑에서 허리 구부리고 쉬어야 하는 처지.
그렇게 수년을 지내고 2000년대에 청소노동자들의 노조 결성이 늘어났다. 가장 조직화하기 어렵다는 고령, 여성, 저학력, 비숙련 노동자들. 투명인간 취급을 받던 그들이 노조를 만들고 파업도 하고 농성도 했다. 올해 초 홍익대 청소노동자 파업처럼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청소노동자들의 노조활동 교육을 담당했던 공공노조 간부가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첫날 교육을 마치고 아차 했다. 교육장이 좀 지저분했는데, 청소하시는 분들이다 보니 굉장히 신경을 쓰시고 어쩔 줄 몰라 해서 집중이 되지 않더라.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미리 깨끗하게 청소를 해놓아야 했다.” 그렇다. 이들은 파업도 하고 노조활동도 하고 사람들의 쾌적함을 위해 청소를 하고 거기서 보람을 느끼는 노동자들이다. 최저임금을 받고 화장실에서 밥을 먹더라도, 더는 투명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지난 25일 고용노동부가 용역 청소노동자들을 사용하는 사업자는 휴게 공간을 의무적으로 제공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개정을 입법예고했다. 작지만 반가운 일이다. 적어도 청소노동자도 밥 먹고 허리 펴야 할 사람임을 인정한 것이니까. 하지만 청소노동자들의 노조와 투쟁이 없었다면 이런 일조차 과연 이루어졌을지…. 그리고 지금도 투명인간인 노동자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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