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9.13 19:29
수정 : 2011.09.13 19:29
|
장귀연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교수
|
연휴 끝나고 출근하여 한숨 쉬며
신문을 펼쳐들었을 노동자 여러분,
당신과 나의 소망이 이뤄지기를
추석, 가을 저녁. 참 예쁜 말이다. 새싹이 뾰족 눈을 내밀고 개구리가 폴짝 튀어오르며 생동하는 봄에서 시작하여, 강렬하게 이글거리는 에너지를 지상 만물이 쑥쑥 흡수하는 여름을 지나, 마침내 둥글고 포실한 결실들이 주렁주렁 가득한 가을. 그리고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차분하게 보람을 느끼는 저녁에, 가을 결실만큼 온전히 차오른 보름달이 뜨는 것을 본다. 그러라고 만든 명절이다.
아쉽게도 올 추석엔 날이 흐려 달 모양을 제대로 보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살짝 구름을 걸친 흰 달을 보았다. 하늘에 계신 분은 구름 뒤에서 더욱 찬란한 달빛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추석 앞두고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하늘로 돌아가셨다. 아들을 바르게 키워 노동운동의 상징으로 만들어냈고, 개인적으로 더없는 아픔을 꿋꿋이 딛고 다시 반평생을 스스로 노동운동가로 살아오셨다. 40년 동안 변한 게 많지 않아 하늘 가도 아들 볼 낯이 없다고 하셨다지만, 이제 이 세상 짐을 벗으셨으니 아들과 손 맞잡고 하늘에서 환한 달빛을 마음껏 느끼시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땅 위에는 여전히 살아가며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 가장 높은 곳에서 가을 저녁 보름달을 올려다본 사람은 김진숙일 것이다. 바닷바람이 살을 엘 한겨울의 절정에 부산 영도의 고공 크레인에 올라, 생동하는 봄과 뜨거운 여름을 지나 풍요로운 가을이 되었는데도 그녀의 투쟁은 결실을 보지 못했다. 그녀는 주식배당금이 수백억이더라도 노동자들은 대량해고하는 현실에 맞서기 위해 크레인에 올랐다. 수확물 가득 차려놓는 추석에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높은 곳에서 한층 가까워진 보름달을 보았을 것이다. 그곳에서 보는 달은 김진숙의 바람과 그를 지지히며 각지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모여들었던 사람들의 희망으로 부풀어 오른 달이다. 달은 다시 기울기 시작하겠지만 희망버스의 희망은 계속해서 차오르기를 소망한다.
정반대로 가장 낮은 곳에서 달을 바라봐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추석 전날 서울시는 서울역사 노숙인 강제 퇴거를 시행한 결과 노숙인들이 많이 줄었다고 발표했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아마도 더 밑으로, 밑으로, 달을 볼 수 없는 땅 밑으로. 명절 대이동에 기차를 이용한 수많은 시민들은 거치적거리는 노숙인들이 없어져서 편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숙인이 되고 싶어 되는 사람은 없고 사치를 부리다가 노숙인이 되는 사람도 없다. 그들은 이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다 마침내 힘을 잃은 우리의 이웃들이지, 내쫓아 없애버릴 사람들이 아니다. 노숙인들도 당당하게 가을 보름달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가장 아름다운 땅의 가장 아름다운 달빛이 근심으로 내려앉는 곳도 있다. 제주도 강정마을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다. 달이 비치면 제주 바다는 은실로 짠 것처럼 환하게 넘실거릴 것이다. 그런데 이 어여쁜 곳에 군사기지란 무시무시한 시설이 들어서려 하면서 이에 반대하는 마을 사람들이 체포되고 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자연에 군대라는 이름의 폭력이 겹쳐지는 현장이다. 군사는 현실이라고 말하지만, 가장 추악한 현실임을 부정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주민들의 반대 또한 폭력적으로 압살하고 있다. 제주 바닷빛에 부끄러운 현실이다. 강정마을의 달빛이 계속 아름다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명절 연휴 끝나고 출근하여 휴가 직후 월요병을 느끼면서 한숨 쉬며 신문을 펼쳐들었을 노동자 여러분. 당신과 나의 소망이 이뤄지기를. 높은 곳에 홀로 매달려 찬바람을 맞지 않고 낮은 곳으로 추락하여 갇히지 않고 아름다운 곳이 여전히 아름다운 삶이 되기를.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