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9.14 19:10
수정 : 2011.09.1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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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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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으로 나와 비슷한 사람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을
가려내고 쫓아내는 공간, 아파트
추석이 유난히 일찍 찾아왔다가 떠났다. 과일 맛이 제맛이 아니네, 물가만 오르고 손에 쥔 제수는 한주먹도 안 되네, 투덜거리면서도 둘러앉아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눈다. 마치 플라톤이 말한 동굴의 비유에서처럼, 이미 사라진 농경시대 공동체가 그림자로 떠올라 비치다가 사라지기 전까지 잠시 머물러 있는 시간이 추석이라고 해야 할까.
초고속 근대화 과정을 겪은 한국 사회이지만, 기성세대 가운데 다수는 농촌 출신이다. 지금의 중년 한국인들은 체험된 것으로서의 농촌적 정서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는 마지막 세대일 것이다. 오래 도시생활을 해온 지인 한 분이 회고하는 어린 시절 농촌생활 모습은 그 안에 담긴 정신적 원칙 때문에 더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경남 함안군의 농촌 마을이었던 그곳에서는 부지런한 농민들이 새벽같이 일하고 돌아와서야 아침을 먹고 한낮이면 나무그늘 아래 누워 낮잠을 잔 후 중참을 먹고 다시 일하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걸인들도 빠지지 않고 집집마다 들르곤 하였다. 걸인이 사립문을 들어서면 이분 할아버지 댁에서는 “손님 오셨다”고 말한 후 자기 집에서 먹던 대로 밥을 차려 마당에 놓인 멍석 위에 상을 내 놓았고 걸인은 그것을 맛있게 고맙게 잘 먹었다. 어떤 걸인은 산 너머 다른 동네로 갈 기회가 적은 동네 사람들을 위한 통신사 구실도 했다. 과년한 처녀가 있는 집에 가서 한 상 잘 받아먹으면서는 ‘산 너머 동네 아무 댁에는 혼인 안 한 총각이 있는데’라고 말을 꺼내 동네와 동네를 이어주는 중신아비 노릇까지 했다. 걸인이라고 할지라도 공동체에서 배제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전령사, 중매쟁이처럼 그가 자처한 역할이 인정받기까지 했으니, 기능적인 면에서도 그의 존재에는 충분한 의미가 부여되고 있었다.
물론 농촌공동체 내에서도 사회적 모순이 극에 달하는 상황에서는 계급 간의 대립도 일어났지만 그것이 일상적인 삶에서 인간관계의 바탕을 이루었던 것 같지는 않다. 추석 명절이 단순히 가족들만의 축일, 제일이 아니라 마을 축제일 수 있었던 것도 소통의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농촌공동체를 이상화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거주와 생산노동 그리고 소비와 문화생활이 하나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던 통합적 공동체와 이 모든 것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현대 도시생활에서 동일한 인간관계가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위의 이야기는 마을공동체가 구성원들을 위한 복지의 기능까지 담당했던 시기의 일이었다. 이제는 국가라는 더 넓은 공간이 구성원들 모두의 최소한의 복지를 책임져야 한다는 요청이 나오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아파트라는 주거공간이 통합이 아니라 배제의 공간이 되고 있음은 병적 현상이다. 경제적으로 나와 비슷한 사람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을 가려내고 쫓아내는 공간 말이다. 아이들은 아파트 평수를 기준으로 해서 친구를 사귀고, 서울 강남과 같은 중상층 밀집 공간에서는, 밥을 굶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혹은 일부러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학부모도 적지 않다. 그러한 인식 격차와 생활공간 분리가 서울시 학교 무상급식을 둘러싼 소동 속에서 투표 양태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뿐 아니다. 과거에는 아파트라 할지라도 계층이 다른 상주 인력이 있었다. 경비 아저씨들이 그들이었다. 경비업무 외에도 온갖 보조업무를 떠맡아 분투했던 이분들이 이제 아파트에서 점점 사라져 간다. 최저임금 지급을 바라지 않는 주민들이 이들을 밀어낸다. 귀가하는 젊은 주민에게 벌떡 일어나 인사하는 늙은 경비의 모습을 가만 바라본다. 중산층 아파트는 허구적으로나마 구질구질함과 남루함의 흔적이 전혀 없는 진공지대, ‘무균의 공간’이 되려 한다. 그리고 ‘무균의 공간’은 면역력이 없고 맹한 인간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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