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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9.22 19:15 수정 : 2011.09.22 19:15

한창훈 소설가

껌 파는 할머니의 친구가 돼준 아이,
무작정 거문도에 와서 선원이 되고
싶으니 배를 소개해 달라고 말했다

그 아이를 처음 본 곳은 지난겨울 머물던 서울의 연희문학창작촌이었다. 브런치 문학학교 강좌 3회를 맡았는데 그때의 수강생이었다. 총기 있어 보이는 스물다섯의 여대생이 새파랗게 배코 친 머리를 하고 있었다. 외형부터 평범하지 않았는데, 사실 그랬다. 지난주에 무엇을 했는가 물었더니 군자역 껌 파는 할머니 옆에 앉아 같이 껌을 팔았단다.

지하철을 타려다가 겨울바람 속에서 낡은 목도리 둘둘 말고 있는 할머니를 발견했고 껌이 다 팔리면 집에 가시겠지 생각하고 주머니를 털어 다 사버렸다. 물론 할머니는 가방에서 그만큼 더 꺼냈다. 저는 한겨울 머리 박박 깎은 주제에 할머니에 대한 걱정은 줄어들지 않아 아예 며칠 동안 그 옆에 앉아 친구가 되어주었다는 것이다.

약자에 대한 연민이 바짝 말라버린 우리 사회의 통념상 이 정도면 외국에서 살다 왔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아이의 부모님은 오래전부터 필리핀에서 선교사를 하고 계셨다. 그러니 초등학교를 마치고 필리핀으로 건너가 거기 학교를 다니다가 뒤늦게 모국의 대학교로 진학을 온 것이다.

문화충격, 당연히 있었다. 그 아이는 자신이 선택한 대학에서 끙끙 앓고 있었다. 그동안은 관계 속의 인간으로 살아왔는데 대한민국에 오니 그게 전혀 안 되고 있다고 말을 이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였다. 이거 무슨 말인지 다들 알고 계실 것이다. 실수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진화를 위한 최고의 동력 아니던가.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한번의 실수에 세상 끝난 것처럼 반응하더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어린 후배들조차 성공을 위한 학점관리, 인맥관리, 스펙쌓기를 강조하며 끊임없이 조언을 하더란다. 그 아이가 보기엔 대학생들도 그저 나이 든 고등학생처럼 보일 뿐이었다. 사회 구성원 간의 유대와 연대, 공동체 의식 따위는 약에 쓰려고 해도, 길거리 개똥보다 찾기 어려웠다.

자유로운 것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는 곳. 색다른 생각 자체를 처음부터 막아버리는 곳. 남들과 다른 시도를 하는 것만으로 곧바로 꼴통으로 찍히는 사회. 그러면서도 자유주의를 내세우는 곳.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세 번의 강좌를 마치고 나는 고향 섬으로 되돌아왔다. 두 계절이 지났다. 얼마 전 느닷없는 소식이 하나 전해져 왔다. 그 아이가 휴학을 하고 내가 사는 거문도로 왔다는 것이다. 무작정 왔고 무작정 미장원을 찾아들어 선원이 되고 싶으니 배를 소개해 달라고 말했다. 독거노인 돌보는 것이나 밭농사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마침 미장원에 들렀던 포장마차 주인여자는 20대 처녀가 배를 타겠다는 말에 기겁을 해서 서둘러 식당을 소개해 주었고 거기에 취직을 했다. 마침 나도 가까이 지내는 후배 식당이었다.

그 아이는 요즘 서빙을 하고 마늘을 까고 설거지를 하며 지내고 있다. 저녁에 시간이 나면 주인아저씨가 장만해준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산책한다. 내 서재에 와서 책을 보기도 하는데, 그러면 그 집 일곱살짜리 아들은 손전등을 들고 마을 끝으로 누나를 마중 나와 있기도 한다. 이런 풍경도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것이다. 그 아이는 마을 사람들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가는 곳마다 칭찬이 자자하고 노총각들이 무리지어 그 식당에 찾아오기도 한다.

일이 고달프기는 하지만 그 아이는 자유롭고 풍부해지고 있다. 최소한 푸른 바다와 해산물 요리가 자신의 스펙에 포함될 것이다. 고민과 방황은 노력하는 자의 특징이다. 아마도 그 아이는 대기업에 입사는 못할 것이다. 하지도 않을 것이다. 대신 삶을 보는 눈이 깊어질 것이다. 그러니 즐겁고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게 그 아이의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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