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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9.25 19:05 수정 : 2011.09.25 19:05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정치적 경쟁과 갈등이 좋은 효과를
발휘하는 문제를 빼고 민주주의를
말한다면 그건 허상이 아닐 수 없다

중대 선거 때마다 새로운 인물 대안이 부각되는 현상은 기존 정당 체제에 대한 불만과 변화의 요구를 표출하는 우리 나름의 정치 양식이라 할 수 있고, 정치 변화의 계기와 잘 만나면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는 측면이 분명 있다. 그런데 최근 그 흐름이 ‘시민 후보론’으로 이어지면서 뭔가 잘못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자칭 시민 후보 모두 “정치가 아니라 행정”을 말한다. 정치란 “정당으로 나눠 싸우는 일”인데, 그게 아니고 “시민 삶을 보살피는 행정”을 하겠단다. 파당적 이해관계를 두고 다투는 정당 후보가 아니라 시민 모두를 위한 공익의 실천자가 후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선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헌신할 수 있는 사람에게 통치를 맡겨야 한다는 생각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상화한 군주제나 귀족정의 비전에서 그 전형을 볼 수 있다. 그리 보면 집단 이익과 파당적 갈등은 불온시될 수밖에 없다. 이런 비전이 강한 사람일수록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앞세우게 되고, 당연히 갈등적인 정치의 방법 대신 구원자적 결심을 강조하기 쉽다. 비정치적인 개혁가 혹은 도덕적 진보파의 대표적인 사례를 꼽으라면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공화정을 연 사보나롤라를 들 수 있다. 그는 청렴과 숭고함으로 존경을 받았다. 로마 교황과 귀족들의 사치와 탐욕을 비판했고 허영에 찬 세속의 삶을 버릴 것을 강조했다. 타락한 사회를 정화하고자 스스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는 자세로 통치를 했다. 시민 후보를 말하며 서울시장 출마를 한 사람 가운데 ‘대속(代贖)을 생각하다’라는 글을 발표한 사람이 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저질러지는 이 엄청난 비극과 범죄와 과오를 대속할 사람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 시대의 고민, 동시대 사람들의 고난, 유린되는 국토, 악화되는 삶의 질, 무너지는 경제와 더 심각해지는 빈부격차, 좌우갈등과 사회적 대결, 소모적 정쟁, 공직자들과 사회적 리더들의 거짓말과 무책임, 시대의 향방에 대한 무지와 편견 …… 그것을 한 지게에 짊어지고 그 어딘가 갖다 버릴 곳이 있다면 감히 그 지게를 한번 져 볼 수 있을 것인가라고 생각해 보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신이 내린 무당이 굿을 할 때 그는 스스로 미친다 ……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마저 빨려가게 만들고 병도 퇴치하고 사람들을 위로한다. 가장 천하게 생각하는 무당이라는 직업도 신이 내린 사람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인데 나에게도 그런 신이 내릴까”를 자문했다.

민주주의란 사회 갈등에 기초를 둔 정치체제이다. 달리 말해 갈등하는 시민 집단들을 대신해서 정당과 정치가들이 공익의 내용이 뭐냐를 두고 정치의 장에서 싸우는 것 이상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그들이 제대로 싸워줘야 시민적 자유와 평등화의 효과가 커진다. 정치적 경쟁과 갈등이 좋은 효과를 발휘하는 문제를 빼고 민주주의를 말한다면 그건 허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정치를 초월해 대속의 지도자가 되고, 시민 후보가 되고, 행정가가 되겠다니, 난감하기 그지없다. 사보나롤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처음 그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는 대단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갈등과 분열, 불안한 현실은 여전했다. 지지자는 줄고 불만은 커져감에 따라 귀족과 교황의 음모가 효과를 발휘하게 되어 4년 만에 그의 통치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정치를 회피하고 갈등과 분열 없이 모두를 구원하고 싶겠지만, 그런 착한 바람만으로 안 되는 게 인간의 현실이다. 힘들겠지만 과감하게 정치가의 길을 가려 해야 하고 그 길에서 실력과 유능함을 발휘하고자 노력하는 것 이외 다른 길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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