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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9.26 19:09 수정 : 2011.09.26 19:09

윤석천 경제평론가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은행의
건물을 보며 침 흘릴 때가 아니다
그 초라한 속을 봐야 한다

자본주의의 심장인 은행이 괴사하고 있다. 한국의 저축은행과 같은 소규모 금융기관들의 얘기가 아니다. 세계의 거대은행들이 쓰러지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메가뱅크들이 마지막 거친 숨을 몰아 쉬고 있다. 2008년엔 리먼브러더스 하나로 끝났지만 지금은 어느 한 은행만의 붕괴로 일단락되진 않을 것이다. 이미 유럽의 일부 은행은 대출을 하지 않고 있다. 은행의 심장이 멈춘 것이다.

시장의 소문은 흉흉하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건전성이 의문시되면서 그 계열사인 메릴린치가 제2의 리먼브러더스가 될 것이란 소문은 꽤 오래된 것이다. 프랑스 은행에선 벌써 큰손(기관)들이 예금을 빼내고 있다는 소식이다. 본격적인 뱅크런의 가능성이 커지면서 몇개 대형은행의 붕괴 전망이 줄을 잇는다.

대체 왜 은행은 주기적으로 위기를 겪으며 결국엔 망하는 걸까.

무능한 정치, 탐욕스런 경영도 원인임은 분명하다. 하나 가장 큰 원인은 산업구조의 변화에 있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생산과 제조에 집중된 산업구조가 서비스와 금융을 주축으로 재편된다. 이른바 선진화다. 노동이 아닌 돈으로 성장을 이루려는 세상으로의 변화는 가속화된다. 선진화는 금융을 발전시켜 마침내 거대 공룡을 만든다. 그러나 비대해질수록 먹잇감을 구하는 게 힘들어진다. 건전한 투자처인 제조·생산 기반이 이미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 기회는 줄어든다.

결국 은행은 위험한 투기거래나 소매금융에 매달리게 된다. 이게 거대은행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생상품 등 누가 봐도 위험한 곳에 투자를 하는 이유다. 갚을 수 없는 사람에게 신용카드를 남발하며 신용을 확대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승수효과’가 거의 없는 부분에 투자가 늘어난다. 당연히 투자한 돈을 회수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생산적이지 못한 곳에 대출을 집중하기 때문이다. 은행의 외형적 자산은 점점 불어나나 그만큼 부실도 커진다.

물론 신용 창출을 무한대로 지속할 수도 없다. 신용 확대가 한계에 달하면 시장은 ‘리셋 버튼’을 눌러 ‘부채 청소 과정’을 시작한다. 그게 2008년의 금융위기였다. 당시엔 완전한 청소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제 비로소 진짜 청소가 시작되고 있다. 쉽게 끝나진 않을 것이다. 미국만 해도 30조달러 정도를 청소해야 한다는 연구가 있다. 그 정도 부채를 줄여야 관리 가능하다는 얘기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두배가 넘는 엄청난 금액이다. 이 정도 부채를 줄이려면 그 과정이 얼마나 극적일지는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은행의 파산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이다.

제조업의 몰락, 임금 하락, 임금 하락분 이상의 신용확대, 신용에 의존하는 경제성장, 마침내 터져버리는 신용, 부채 청소 과정의 반복이 현대의 신자유주의 선진경제를 정의한다. 그것에 피를 공급하는 은행도 이 과정을 따라 운명을 같이할 수밖에 없다. 이게 은행이 주기적으로 망하며 금융위기가 생기는 이유이다.

이젠 돌아봐야 한다.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며 호화롭게 서 있는 은행 건물을 보며 침을 흘릴 때가 아니다. 그 초라한 속을 봐야 한다. 투기적 거래를 하지 않으면 도저히 이익을 낼 수 없는 성장 논리가 은행을 병들게 하고 있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 병의 치유는 의외로 간단하다는 사실을. 근검·절약을 기반으로 하는, 무엇보다 노동자의 땀을 귀중히 여기는 제조 및 생산 기반 사회로의 복귀, 그것이 정답이다. 건강하면서도 생산적인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 구축, 그것이 유일한 치료제다. 그러나 또 안다. 그곳으로 돌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저 폭락하는 은행 주가가 탄광 속의 카나리아 울음소리가 아니길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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