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1.09.27 20:41 수정 : 2011.09.27 20:41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과학자들이 정부에만 의존 않고
다양한 형식으로 연구비를
마련하게 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데이비드 바이트런트와 그의 동료 마크 프리드건은 과학자를 직접 후원하고 싶어도 그 돈이 엉뚱하게 쓰일까 봐 불안해 기부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을 위해 ‘펀드사이언스’라는 흥미로운 비영리단체를 설립했다. 동물행태학자가 “멸종위기의 철새를 연구하고 싶은데, 연구비가 부족해요. 5000만원만 지원해주세요!”라고 글을 올리면, 이 연구가 의미있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직접 후원할 수 있도록 연결해준다. 이른바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을 도와주는 조직인 셈이다.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모은다’는 뜻의 크라우드 펀딩은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불특정 다수로부터 펀드를 모으는 방식을 말한다. 과학자가 쉬운 언어로 연구프로젝트를 정리해 킥스타터나 인디고고 같은 크라우드 펀딩 웹사이트에 올리면, 일반인들이 소액 후원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해주는 형식이다.

일례로 아이폰을 세워 고정해 영화나 사진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삼각받침대 ‘글리프’는 톰 게르하르트와 댄 프로보스트의 야심작. 이들은 ‘글리프 활용법’ 동영상을 킥스타터 웹사이트에 올리고, 누리꾼들에게 이 제품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자금을 후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몇달 뒤 누리꾼 6000명이 무려 2억원의 자금을 모아주었고, 이들 열성적인 후원자 덕분에 글리프는 결국 히트상품이 됐다.

지금까지 과학자에 대한 연구비 지원은 주로 정부나 기업이 해왔다. 그러다 보니 논문과 특허 같은 연구성과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엄격한 관리하에 정해진 목적에 대해서만 지원하는 용역방식이 대부분이었다. 다시 말해 국가경쟁력에 도움이 안 되는 연구, 제품 개발과 상관없는 연구는 지원받기 어려웠다.

하지만 무모하고 창의적인 연구가 인류를 한 걸음 진보하게 하는 법. 이제 과학자들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자신의 야심찬 연구가 왜 중요한지 직접 설득할 수 있는 소통 창구를 갖게 됐고, 의미있는 과학연구에 직접 후원할 수 있는 나눔의 기회를 누구나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과학자들이 정부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형식으로 연구비를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크라우드 펀딩은 성공 가능성은 낮지만 창의적인 시도, 의미있는 연구이지만 성과로 직접 연결되기 어려운 프로젝트가 지원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될 수 있다. 또 일반인들은 과학자를 소신껏 후원하고 자신의 지원금이 어떻게 연구에 활용되는지 직접 볼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과학자는 자신을 지원해준 후원자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강연과 책을 통해 소통해야 할 의무를 갖는다.

크라우드 펀딩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일반인들과 직접 소통하는 과학자들에게 각별히 유리할 것이다. 과학자들이 실험실에만 머물지 않고 세상과 소통을 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사람들도 과학자들의 연구에 관심과 애정이 더 깊어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얼마 전 <뉴욕 타임스>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연구비 지원을 받은 과학자들을 소개하면서, “크라우드 펀딩은 대학이나 연구소에 속하지 않은 아마추어 과학자들에게 더 많은 연구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음반을 내고 싶어하는 가수 지망생이나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후원하는 방식이었던 크라우드 펀딩이 이제 연구비가 부족한 과학자,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꿈꾸는 기술자, 무모할 정도로 도전적인 아마추어 과학자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려고 한다. 크라우드 펀딩이 무분별하게 난립되지 않고, 시민과 과학이 서로 각별한 관계를 맺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