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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0.02 19:22 수정 : 2011.10.02 19:22

금태섭 변호사

학생인권조례는 반성문이다
교육현장의 짓밟힌 아이들에게
내미는 최소한의 반성문이다

영화 한편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청각장애 학생들을 성폭행한 교사들, 그리고 누구도 정당하다고 말할 수 없는 법정의 결론. <도가니>를 본 관객들은 어떻게 대명천지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격분하고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묻는다. 원작인 소설이 다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정치권에서는 ‘도가니법’ 제정이 추진되기까지 한다. 대법원장이 영화를 봤고 당시 재판에 관여했던 판사, 검사, 변호사가 언론에 해명을 했다. 검찰총장도 이 영화에 대한 질문이 예상되는 대검찰청 국정감사를 앞두고 영화를 관람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영화가 고발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재판과정을 사실과 조금 다르게 보여준 점도 있어서 사법신뢰가 근거 없이 훼손된 점이 안타깝다”는 대법원장의 발언이 나왔고, 아동에 대한 성폭행이 친고죄로 규정되어 있었는데 피해자의 부모가 합의를 했기 때문에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밖에 없었다는 재판장의 해명이 있었지만 성난 여론을 잠재우기에는 턱도 없는 것 같다. 원작자인 공지영이 썼듯이,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는 말을 듣는 순간 누구나 가시에 찔린 듯한 아픔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 앞에서 법 규정의 미비나 부모의 합의를 내세우는 것은 그야말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잘못된 법을 내버려두고 있던 것을 포함해서 모든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좀더 깊이 들어가서, 이런 일이 벌어진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인권에 대한 경시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훈육의 대상으로만 보고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로 대접해주지 않는 풍토가 교육 현장에서 이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바탕이 된 것이다. 소설 속에서 자애학원의 생활지도교사는 학생의 손을 돌아가는 세탁기 통에 넣는 체벌을 하려고 하다가 동료 교사가 대체 뭐 하는 짓이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교육중입니다.” 물론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극단적인 사례를 든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우리의 학교에서 이런 일이 절대로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학생들이 기분풀이 대상이나 더 나아가 노리개로 다루어지는 영화 속 장면이 정말로 낯익은 모습이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이 최근 서울시의회에 제출됐다. 서울시교육청에서도 다음달 조례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 안들이 학생의 권리만 강조한 것으로서 체벌 전면 금지, 교내 집회, 두발·복장 자유, 양심과 종교의 자유 등을 허용하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과 교사의 교수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한다. 도대체 왜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져야 하는지 정말 모르는 걸까. 영화 <도가니>에서 다루어진 사건이 어디 먼 나라에서 일어났던 일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학생들의 인권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내용의 조례를 만드는 일에 그렇게까지 어깃장을 놓아야 하는 걸까.

인화학교 사건에 실제로 관여했던 판사, 검사, 변호사만을 비판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우리 모두가 책임을 느껴야 한다. 아이들에 대한 체벌은 필요하고 학생은 ‘지시’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이 낳은 괴물 같은 사건이 인화학교 사건이다.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는 것은 다른 곳도 아닌 교육현장에서 짓밟힌 아이들 앞에 어른들이 내밀 수 있는 최소한의 반성문이다. 영화 <도가니>를 보고 나서도 아이들의 인권에 관한 조례를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진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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