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0.09 19:07
수정 : 2011.10.09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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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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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무소속 현상이 아니다
민주당 외부의 민주당이자
진보정당 외부의 진보정당이다
난 지난 칼럼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체제로의 이행을 예고한 바 있다. 아울러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실수가 더 빈번해질 것도 예고하였다. 하지만 난 이렇게 빨리 실수가 시작될 줄은 몰랐다. 서울시장 지원 유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실수는 바로 얼마 전 위기에 빠진 ‘우리 정치 전체’와 정당정치를 구하자는 그녀의 메시지이다.
그럼 위기가 아닌가? 난 위기이기는커녕 오히려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 정치 자체가 아니라 기존 정당체제가 훌륭한 역할을 다하고 위기에 빠진 것일 뿐이다. 새로운 체제를 만들기 위해 한국 사회는 정치시스템 재구성 운동을 시작했다. 이 사회적 보호운동은 진보파 일부가 착각하듯이 단지 신자유주의 반대의 노동운동이나 국가주의적 분배의 복지시대를 의미하지 않는다. 진보의 대부인 칼 폴라니의 사유 방식을 빌리자면 지금은 노동, 세대, 지역, 지구생명체 등 전 사회적 보호운동이 시장과 정치를 삶의 뿌리에 다시 접속하기 위한 운동이다. 이 사회적 보호운동과 결을 같이하기보다는 박근혜 전 대표처럼 이에 맞서 기존 위기의 시스템을 강화하려는 시도는 시대착오적이다.
미래지향적 정당 재편성의 징후들은 산재한다. 무당파 유권자들이 전체 유권자의 과반수를 넘어서거나 안철수 교수에 대한 폭발적 지지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디지털 네이티브로 상징되는 젊은 유권자층의 가치정향의 새로움과 그 영향력의 이례적 증가도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지금 부산 등지에서의 급격한 지역주의 구도 해체나 지구적으로도 기존 경계를 무너뜨리는 소셜네트워크 혁명을 보라. 심지어 토머스 프리드먼이나 윤여준 같은 합리적 보수의 논객조차 기존 시스템을 해체하는 제3당 운동을 주창한다. 극단적인 정당의 주변화를 극복하는 정당 해체와 재구성이 시작된 것이다.
새로운 체제의 정당은 어떻게 진화해갈 것인가? 시민이 실제적으로 정책과 공직 선출을 주도하고 활동가와 전문가가 이와 균형 있게 협력하는 시민 주도 연합정당, 전국적이고 다양한 시민의 작고 큰 목소리에 역동적으로 반응하는 제도와 문화를 가진 정당, 협동조합과 노동 일터 등 지역 삶에 뿌리를 둔 지역연방제형 정당, 20대의 새로운 문화적 감수성에 기반을 두면서도 다양한 세대의 공존과 통합을 주도하는 정당, 세계시민과 함께 새로운 지역적·지구적 평화와 삶의 체제를 만들어가는 지구적 정당으로 진화해갈 것이다.
내가 새로운 체제를 단지 정당체제라 하지 않고 더 넓게 정치시스템이라 하는 이유는 21세기에서 정당은 유일한 정치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민정치운동과 긴밀한 파트너십을 이루는 것이 새 정치시스템의 핵심이다. 정당은 이 아래로부터의 시민운동을 반영하는 사회운동형 정당이다. 동시에 시민 어젠다를 생산적 갈등과 타협을 통해 제도권에 안착시키는 사회통합형 정당이기도 하다. 이 시민정치조직은 정당이 시민의 바다에 뿌리내리도록 반응성을 강화하고 견제하며 시민정치가를 훈련해 파견한다. 이 시민정치운동은 비정치적인 전통적 시민운동, 시민교육운동, 시민과 전문가가 함께 구성하는 지식생태계 운동과 함께 시민 주도 시대의 핵심이다.
결국 안철수와 박원순 현상은 그저 무소속 현상이 아니다. 그들은 민주당 외부의 민주당이자 진보정당 외부의 진보정당이다. 동시에 민주당과 진보정당을 넘어 새로운 정당, 시민정치, 지식생태계 디자인의 시작이다. 이들에게만 기대거나 한계에 절망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시스템과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책임 있는 이의 자세이다. 다음번 박근혜 전 대표의 실수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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