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0.11 19:20
수정 : 2011.10.1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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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귀연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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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는 기업주·주주들에겐
더없이 편리한 방법이지만
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죽어간다
한여름 폭염이 찾아오면 흔히 ‘살인적인 더위’라고 말한다. 수사적인 표현이다. ‘살인적인 구조조정’이라고 말해도 수사적인 표현일까? 어쩌면 글자 그대로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10월에 들어선 지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잇따른 노동자들의 죽음 소식을 들으며 그런 생각이 든다.
지난 4일 그리고 10일,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2009년 쌍용자동차 대량 정리해고 사태 이후 자살자는 17명이 되었다. 숨진 고아무개씨와 김아무개씨는 모두 2009년 정리해고 반대 파업에 참여했다. 고씨는 정리해고 대상이 아닌 이른바 ‘생존자’로서 파업에 참가했다가 계속 쌍용자동차에서 일했는데, 회사 동료와 술을 마신 뒤 차에 연탄불을 피워놓고 숨진 채 발견되었다. 엿새 후 목을 맨 김씨는 파업이 실패로 돌아간 다음 희망퇴직이라는 형태로 정리해고되었다. 그 후 취업이 되지 않아 퇴직금에다 차를 판 돈까지 생활비로 써야 했고, 우울감과 대인기피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조정에 의한 정리해고는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이다. 잘못한 것도 없고 예상하지도 않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회사 사정’으로 그만 나오란다. 직장은 생계가 달려 있는 곳이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애착을 갖는 곳이기도 하다. 그것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외상후증후군을 앓게 하고 죽음으로 몰아갈 만큼 폭력적인 사건이다. 정리해고를 피한 사람들도 편하지 않다. 그들이 ‘생존자’라면 ‘죽어가는’ 동료들을 지켜봐야 했으므로. 지금 희망버스가 달려가도 정리해고를 또 막지 못한다면, 한진중공업은 제2의 쌍용자동차가 될 수 있다.
노동자들의 죽음을 알려온 또다른 기업은 케이티(KT)다. 5일 윤아무개씨가 심장마비로 숨진 데 이어 이튿날 전아무개씨가 작업현장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자살은 아니지만 둘 다 전형적인 돌연사·과로사다. 케이티는 분사와 인원감축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계속해왔으며, 이에 따라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되거나 자회사로 전환배치되고 노동강도가 극심히 강화되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의 사망사고가 급격하게 늘었다. 전씨의 죽음은 올해 케이티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로 14번째. 유족들은 원래 8명이 맡던 구역을 2명이 담당하게 되면서 퇴근 후에도 야간대기를 하는 등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말했다. 2인1조로 일했다면 돌연 쓰러졌어도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전씨의 연락이 끊겨 몇시간 후 회사 직원들이 작업현장을 수색한 다음에야 숨진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다.
3일에도 케이티 자회사 케이티시에스(KTCS)의 노조지부장인 전아무개씨가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이했다. 전씨는 케이티에서 20여년간 일하다가 2008년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의해 명예퇴직을 하고 자회사로 배치되었다. 그리고 3년 만에 다시 구조조정을 이유로 사직을 강요당했고 그에 응하지 않자 생소한 업무로 전환배치되었다. 이 전씨의 죽음은 돌연사와 자살을 포함한 케이티 사망사고에 집계되지 않았다. ‘올해 케이티 사망사고 14번’은 계열사를 제외한 숫자이므로. 구조조정에 의해 자회사와 하청업체로 갔거나 아예 해고된 노동자들이 얼마나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지는 모른다.
구조조정의 정의를 보면 기업 조직을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재편하는 것이란다. 말은 좋다. 인원을 줄이고 노동강도를 높이면 이른바 ‘효율성’은 물론 더 높아질 것이다. 기업의 이윤도 많이 남을 것이고, 이윤이 줄어들 때는 다시 정리해고를 하면 된다. 기업 소유자, 주주들에겐 더없이 편리한 방법이다. 그동안 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죽어간다. 살인의 피가 묻은 이윤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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