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위기는 시장·자본주의의
혁신을 요구하면서 다시 전환의
기회를 제시하는 것인지 모른다
지루한 일상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위기설, 상업적으로 과장된 각종 위기설, ‘위기’라는 말이 남발되다 보니 언어도 인플레이션이 되는가, 사람들의 위기의식도 무뎌지는 듯싶다.
자본주의에서 균형은 우연이고 불균형이 오히려 정상이라고 설파했던 ‘불황의 경제학자’ 케인스처럼 우리는 이제 웬만한 위기에는 ‘또 그러나 보다’ 하고 넘어간다. 인간 자체가 제 뜻과는 상관없이 부조리한 우주 속에 던져진 어처구니없는 존재, 그 자체가 위태로운 줄타기의 연속인지도 모르니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어찌어찌 봉합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공적자금을 동원하여 금융회사를 살리느라 진이 빠진 각국 정부가 재정위기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계속되는 ‘위기’에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월가 시위에 나섰다. “우리는 1%의 탐욕과 부패에 저항하는 99%”라는 외침은 이제 뉴욕과 미국 주요 도시를 넘어 유럽과 남미, 전세계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 이들은 ‘군사용 무인기 전시전’을 열고 있던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 몰려가 무인공격기 사용과 국방분야 예산 과다지출에 항의하기도 하였다. 월가 시위는 이제 빈부격차 외에 다양한 사회문제로 항의를 넓혀가고 있다.
이런 한편에서 워런 버핏 같은 투자의 달인이 “내 비서도 소득의 36%를 세금으로 내는데 나는 17.4%밖에 내지 않는다”며 상위 0.3%의 부자들에 대한 증세를 촉구하였다. 프랑스의 억만장자 16명은 부유층에 ‘특별기부세’를 신설해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독일에서는 ‘부자 증세를 위한 부유층 모임’이 아예 “2년간 5%의 ‘부유세’를 내면 1000억유로의 추가 조세수입을 거둘 수 있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탈리아의 페라리 자동차 회장도 “부자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부자 증세를 지지하고 나섰다.
돌이켜 보면 노동조합이 합법화되고 노동조합의 단체협약이 인정된 것은 1930년대 대공황기였다. 노동자의 소득이 일정 수준 보장되어야 대중 소비가 살아나고 경기를 살릴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위기극복 방안, 시장의 자기구제 방안이었다.
마찬가지로 지금 금융위기에 이은 각국의 재정위기는 시장과 자본주의의 자기혁신을 요구하면서 실인즉 다시 한번 우리에게 전환의 기회를 제시하는 것인지 모른다. 유럽의 재정위기는 유럽연합의 시너지효과를 다지는 반전의 기회가, 월가 시위는 세계화의 시너지효과를 공유하는 반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각국에서 온 인종들로 들끓던 이민노동자의 나라 미국은 남북전쟁까지 겪으면서 이질적인 동부와 서부, 남부와 북부를 묶어내는 아메리카‘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을 형성하였다. 프랑스와 독일의 지원에 힘입어 가까스로 그리스의 디폴트 위기를 넘긴 유럽‘연합’(European Union)도 이질적인 인종과 계층을 통합해 가기까지 여정이 만만찮을 것이다. 파생상품의 남발과 과도한 레버리지로 투기의 정글처럼 비판받는 금융세계화 역시 본래는 자본의 국제이동을 원활하게 하여 선진국 유휴자본의 효율성(투자수익률)을 제고하고 자본부족에 시달리는 후진국의 경제개발을 촉진하는 데 역사적 의의가 있지 않던가. 월가 시위, 각국 부자들의 증세 요구, 바야흐로 전환의 기회가 오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기 위해 먼저 할 일이 있다. 위기에도 나락에 떨어지지 않도록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갖추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야 세계화 속에서 모험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의 용기가 생겨날 테니까. 김윤자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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