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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0.13 19:21 수정 : 2011.10.13 19:21

한창훈 소설가

레저가 시합이 되는 걸까?
바다가 낚시라면 산은 등산이다
등산 시합 한다는 소리는 못 들어봤다

두 뼘짜리 나무막대에 줄을 매고 바늘 묶어 놓은 오죽잖은 채비로 돌 틈에서 베도라치와 놀래미를 낚기 시작한 게 7살이었으니 내가 가장 오랫동안 해온 게 낚시이다. 그때 맛들인 낚시는 계속 이어졌다. 굵은 감성돔을 여러 마리 낚은 게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학꽁치 일이백마리 정도는 우스웠다. 육지로 전학을 가서도 기회만 되면 낚싯대를 만졌고 방학이 되어서 고향에 오면 새벽마다 갯지렁이 파러 가는 것이 일이었다. 몇년 전 이곳으로 돌아와서도 이틀이 멀다 하고 낚시가방 메고 나갔으니 40년 조력(釣歷)은 웬만한 낚시꾼한테 안 뒤질 것이다.

낚시 하면 떠오르는 것이 푸른 바다, 하얀 파도, 역동적으로 꿈틀대는 물고기의 힘, 그리고 신선한 생선회이다. 그것들을 만나면서 생업에 찌든 피로를 씻어내고 복잡한 문제도 잠시 잊는 것, 그게 매력이다. 친구나 가족과 함께하면 훨씬 즐거워진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낚시에 환멸이 들기 시작한다.

며칠 전 우리 섬에 낚시꾼들이 모여들었다. 일년 사시 꾼들이 오는 곳이니 새삼스러울 것 없으나 그날은 로마 보병처럼 중무장한 이들이 유별나게 많이들 모여들었다. 들어보니 낚시대회가 열린다고 했다. 낚시 관련 채널에서 한두 번씩은 보셨을 것이다. 조를 짜고 가위바위보나 추천으로 자리를 정하고 일정 시간 안에 일정 크기 이상의 물고기를 낚아내서 무게를 재는 것으로 예선을 치르고 다음날 새벽부터 본선을 하고 입상한 이들에게 상패와 트로피를 주는 그런 것 말이다. 그들이 고가의 장비와 수많은 밑밥을 들고 들어오자 주민들은 이렇게 외쳤다. “오메, 우리 동네 고기 씨가 마르겠네.”

생계형 낚시꾼인 나와 달리 이들은 레저형이다. 레저란 말 그대로 생계의 의무에서 잠시 벗어나 푸른 자연을 대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대회이다. 시합을 한다는 것이다. 레저가 시합이 되는 걸까? 바다가 낚시라면 산은 등산이다. 등산할 때 시합한다는 소리는 못 들어봤다.

낚시를 말할 때 보통 운칠기삼이라고 한다. 운이 칠할이고 기술이 삼할이라는 소리이다. 기술보다는 운이 훨씬 크게 작용하는 게 낚시이다. 꾼에 따라서는 운을 구할로 보는 이도 있다. 나도 그쪽이다.

이번 대회 참가자들이 빵가루를 2t이나 싣고 왔다. 주로 벵에돔 공략할 때 쓰는 것이다. 밑밥 양에 관한 제재도 없었다. 크릴새우는 남극해에서 잡아온다. 펭귄의 밥이다. 자료를 보면 남극의 크릴새우가 80% 줄어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고 칠레에서 주로 잡아가기 때문. 칠레에서는 양식장 물고기의 사료로, 우리와 일본에서는 미끼와 밑밥으로 쓰인다.

낚시꾼 한 명당 1.5㎏ 크릴 블록을 여덟 개 정도 밑밥으로 쓴다. 파우더에 섞어 주걱으로 뿌리는 것이다. 새우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블록 하나에는 방부제 처리한 크릴이 평균 3000마리 정도 들어 있다. 욕심 많은 사람은 20개도 넘게 쓴다. 쉬지 않고 뿌리는 것이다. 이번에 참가한 꾼들은 200여명. 200명이 8개의 블록을 쓴다고 보면 근 500만마리의 크릴새우가 사용된 것이다. 그러니 부대비용도 수십만원이 든다. 우선 참가비가 28만원이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1등 상금이 자그마치 4000만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운이 좋으면 이틀 만에 4000만원을 버는 것이다.

이 정도면 낚시 본래의 의미는 사라져버린다. 그저 일확천금을 노리고 도박을 하는 것이다. 돈 놓고 돈 먹기이다. 그들은 이틀 동안 크릴을 잔뜩 뿌리고 나서 되돌아갔다. 푸른 바다는 그들에게 일회용 도박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저 남쪽에서 배고파 우는 펭귄과 고래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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