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0.26 18:58
수정 : 2011.10.26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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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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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를 거치면서 많은 이들이
놓치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것은
한-미 FTA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10월26일에 있었다. 10·26이라는 날짜의 의미를 생각하는 사람은 한국 정치사상 또 한 번의 중요한 결정이 이날 이루어졌다는 것을 실감할 것이다. 다른 면에서, 이 선거는 현대 대중민주주의 정치의 어떤 취약점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법했다. 권력의 향방이 바뀌는 중대한 계기라 생각해서 이판사판으로 선거운동을 벌이는 어떤 진영이 있었고, 그 덕분에 외국 대학에 방문한 다른 후보가 방문연구원이었는데 방문연구자라고 기재했다는 둥 어쨌다는 둥 비난하는, 말하자면 부침개를 왜 전(煎)이라고 부르냐며 멱살 잡고 항의하는 식의 한도 끝도 없는 시비가 언론에 오르내렸다. 후보자의 외모와 이미지에 대한 관심이 정책에 대한 진지한 분석을 가림으로써 정치가 지나치게 감성민주주의적인 방향으로 흐르기도 했다.
사실 이번 선거를 거치면서 많은 한국 사람들이 놓치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것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직전 미국 방문길에 오른 가운데, 국내에서 선거에 모든 신경이 쏠려 있는 동안 미국 의회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법안을 비준했고, 이 대통령은 미국 의회에서 열렬한 박수를 받으며 연설을 했을 뿐 아니라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를 방문해서 그곳 자동차 업계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누가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은 결코 아니었겠지만 시끌벅적하니 모든 사람의 정신을 빼놓는 서울시장 선거와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모은 이 대통령의 방미가 겹치다 보니, 언뜻 보기에 자유무역협정 추진자들을 위해서는 ‘동쪽에서 함성을 올리고 서쪽을 치는’(성동격서) 형국이나 다를 바 없게 되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문제를 놓고 몇년째 분석과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이해영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들이 온통 서울시장 선거에 관심이 쏠려 있어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마치 식어버린 이슈처럼 되어버렸다.”
이런 분위기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처음 논의되던 2006∼2007년 무렵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있다. 당시에는 지식인 사회 전체가 이 문제를 논의하였고 반대시위도 격렬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거의 논의되지 않고 있고, 자유무역협정으로 직접 영향을 받는 집단들은 개별적으로 관심을 가지겠지만 그 목소리가 언론에 별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민주노동당에서 독소조항 열두가지를 정리해서 발표하였지만 정부 쪽에서는 그저 좋은 일만 가득한 것처럼,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한국 경제에 신기원이 열릴 것처럼 이야기한다.
정부의 이런 태도를 보면 4대강 사업을 강행하던 방식을 연상시킨다. 정부는 4대강 사업을 추진하면서 일자리 34만개를 만든다고 공언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일용직 외에 청년들을 위한 어떤 일자리가 34만개나 만들어졌던가? 정부는 이번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덕분에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5.6% 증가하고 일자리가 35만개 늘어난다고 공언하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들과 농업부문에 가해지는 타격으로 자영업자가 사라지고 농업인구가 해마다 큰 비율로 사라지리라는 예상도 함께 계산에 넣은 것일까. 그리고 쌀시장 개방 문제는 왜 제대로 논의되지 않을까.
참여정부가 처음 주도한 정책이어서 그런지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민주당의 태도도 명확하지 않다. 국민들은 세계 금융위기에 더해 한-미 자유무협정의 문제점도 몇몇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가며 자력으로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한국인들이 지적 수준이 높고 똑똑하다고는 해도 이건 국민들에게 정말 심한 부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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