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0.30 19:23
수정 : 2011.10.30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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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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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엔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가
그 비밀이 ‘김어준 현상’에 숨었다
시민정치가 새 정치문법을 만든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의 책 제목이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에 연애의 진정한 고수가 되고 싶은 분은 이 책을 읽고 실천하며 다시 읽으면 된다. 그는 사랑의 복합적 속성, 아름다움과 추함, 기대와 환상을 기막히게 이해한다. 보너스도 있다. 잘 통독하면 정치의 고수까지 덤으로 된다. 왜냐하면? 연애나 정치가 다 본질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책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그를 직접 만나 비급을 전수받는 제자가 되고 싶은 분들은 간단하다. 한국의 알랭 드 보통인 김어준 ‘나는 꼼수다’ 사회자를 대신 만나면 된다. ‘나꼼수’를 단지 술자리 심심풀이 ‘구라’나 ‘심층 탐사 보도’로만 이해하는 분들은 김어준의 진정한 위력을 반만 아는 것이다. 그는 한국 정치심리학의 새 지평을 연 탁월한 지식인이다. 이 연애와 정치심리학의 달인이 최근 경찰의 수사 대상이 되었다. 세상에, 그들은 마치 사랑에 빠진 딸을 삭발하려는 분노한 아버지와 같다. 그들의 탄압이 오히려 그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더 단단히 해준다는 평범한 연애의 진리조차 이해하지 못하다니.
그간 왜 한국에는 정치심리학이 잘 발달하지 않았을까? 난 과거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한국에서 박근혜 인기의 심리학적 비결을 분석하는 책조차 없고 정치인들이 건조한 통계 프레젠테이션으로 시민을 설득하려 하는 것을 보며 충격에 빠진 적이 있다. 사실 미국도 한동안 ‘과학적’ 연구의 헛된 미명하에 심리학이 천대받은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결과 경제 대위기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학문의 위기가 양산되었다. 미국 유행에 민감한 한국은 협소한 의미의 과학주의를 맹신해오며 정치심리학을 저발전시켰다.
그간 왜 한국에는 김어준처럼 구체적 삶 속에서 연애의 철학과 정치론을 풀어내지 못했을까? 난 그 근저에 지식을 삶의 뿌리에 단단히 연결하려는 실천적 지식의 문제의식이 약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물론 도올 김용옥 교수나 신영복 성공회대 전 총장 등 탁월한 예외들도 많지만 마이클 샌델처럼 사상과 구체적 삶이 잘 연결된 지식담론이 한국엔 너무 약하다.
그간 왜 한국의 대부분 진보 진영들은 김어준과 달리 자주 정치 예측에 실패하게 될까? 왜냐하면 시민의 구체적 삶과 자신들의 이념을 부단히 조응하려 노력하지 않거나 인생의 복합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이 시민을 사랑하는 이유와 반대로 시민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이유가 다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조차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또 어떤 이들은 질투심에 눈이 멀어 김어준의 분석은 친노의 정치적 결론이라 비난한다. 세상에, 이들은 분석이 현실의 추이와 일치하느냐를 먼저 따지기보다 낙인을 찍는 것으로 승리한다고 보는 모양이다.
일부 진보파들의 불편한 속내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김어준 현상은 더 강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깨어 있는 시민들은 정치 엘리트들의 내공의 수준을 파악하게 되고 소셜네트워크 등 자신들의 엄청난 무기의 위력과 맛을 알게 되어 본격적으로 정치가들을 통제하려고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 정치가 만들어내는 안철수, 문재인 현상은 이러한 새 정치문법 속에서 움직인다.
김어준의 나꼼수 방송과 <닥치고 정치> 신간엔 내년 누가 대통령이 될지의 비밀과 다양한 정치이론으로 발전할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 보물처럼 들어 있다. 그의 다양한 단서를 가지고 저마다 나는 왜 안철수나 문재인을 슬프게, 혹은 기쁘게 사랑하는가, 그 사랑의 눈물과 미소엔 몇%의 정당한 기대와 몇%의 환상이 배합되어 있는가를 분석해보아도 재미있을 것이다. 이제 사랑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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