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1.02 19:07
수정 : 2011.11.0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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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민 <문화방송> 전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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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서울시장 선거 결과에는
새롭고, 복잡하고, 전국적인
메시지가 많이 담겨 있다
서울시장 선거에 대해 박원순 후보가 7%포인트 차이로 압승했다는 평가와 분석이 대부분이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위력에 주목하고 있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정국 요동은 예고된 것이었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까지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번 선거 결과에는 이런 겉모습보다 새롭고, 복잡하고, 전국적인 메시지가 많이 담겨 있다.
우선 선거 결과를 잘 따져보면 자칫 박 후보의 승리는 확실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투표율 48.6%에 나경원 후보의 득표율을 계산하면 나 후보는 전체의 22% 이상 득표했다. 여기에 벌써 잊어버렸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투표율이 있다. 오세훈 시장이 큰돈 들여 정치도박을 벌인 주민투표에서 나타난 투표율 25.7%이다. 당시 21% 이상 찬성했다는 관측이 있었고, 이를 믿는다면 나 후보가 얻은 지지율과 신통하게 비슷하다. 두 투표는 해방 이후 어느 선거에서나 항상 ‘여권형 묻지마 투표’가 적어도 20%, 많으면 40%에 육박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해준다. 이 투표자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특급 태풍이나 쓰나미가 닥쳐도 기어코 투표장에 나가고, 누가 출마했는지 따지지 않고 붓두껍을 든다. 만약 서울시장 선거에서 40% 안팎의 투표율을 보였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투표가 끝나면 지배권력이 항상 그래 왔듯이 “국민의 뜻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말하지만, 정치권이 ‘묻지마 투표’에 의존하는 한 ‘묻지마 정치’는 계속된다. 묻지마 정치는 여야 모두 정도와 지역의 차이를 보일 뿐 비슷하다. 선거 이후 여야의 언행에서 이런 산법이 엿보인다.
다음으로, 여론조사는 들쭉날쭉했다.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되풀이되면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현상이다. 기술적인 문제를 풀어보려고 휴대전화를 일부 포함하고 디지털 방식을 도입했지만 유권자의 마음을 짚어내지 못했다. 미네르바 사건이 남긴 ‘셧 더 마우스’는 사회적 기억에 생생하다. 입을 닫은 사람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나꼼수 등을 통해 사실과 의제를 끊임없이 개발·생산하고 열심히 실어 날랐다. 이들은 지배권력을 따르는 신문·방송에 등을 돌리고 ‘미디어 망명’을 한 뒤 ‘미디어 포트폴리오’ 시대에 성큼 들어섰다. 출구조사에서는 30대 4분의 3의 몰표, 40대의 가세로 세대간 나뉨이 심각하다는 마음의 상처가 드러났다. 20대 청춘만 아픈 게 아니라 30대는 무척 아프고 40대는 상당히 아프다. 세대간 동조는 1987년 6·10 이후 처음이다. 서울 젊은이는 지역의 사슬에 얽혀 포로로 살아온 부모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지역주의에 대한 정치적 도전을 집안에서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는 성패와 상관없이 새로운 현상이다. 다른 지방선거에서는 지역주의 심화 현상이 나타났지만 도전은 일단 선례가 될 것이다.
아픈, 답답한 마음들이 힘을 합쳐 기존 정당의 대체재로 시민단체 출신을 지원했다. 박 시장을 포함한 시민사회가 수권능력을 지녔는지가 중요해졌다. 또 여야 각 정파와 대선후보군이 내년을 어떻게 꾸려갈지 경쟁해야 한다. 투표 결과에 화답해 정치권은 복지 강화를 내놓고 있지만 기다리는 해답은 전면 구조개편일 것이다. 정치권이 어려운 해답을 피해 묻지마 투표에 기대려 한다면 바로 레드카드를 받을 여건이 마련되고 있다.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는 ‘명박산성’으로 경호실을 쌓거나 4대강 찬성론자를 중용하거나 관심이 없다. 아픈, 답답한 마음들은 영화의 끝을 궁금해하듯 권력의 끝을 기다리고 영화가 끝난 뒤를 현실에서 꿈꾸기 시작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망각이라 했듯이 기대의 반대는 실망이 아니라 무시라고 할까. 마음 얻기까지 오래 걸리고 어렵지만 마음을 잃는 일은 순식간이고 쉽듯이 사람들이 오래 기다려주지 못할지 모른다. 정치는 정중동에서 요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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