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1.06 19:19
수정 : 2011.11.06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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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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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화하는 진보 통합정당 추진에
큰 기대가 생기지 않는 건 왜일까?
권력 문제를 대하는 태도 때문이다
진보 안에서 통합정당을 만들려는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그리고 진보신당에서 통합을 주장했던 세력이 함께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제 관심은 지도부를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정책 내용을 내걸 것인가로 모아진다. 그런데 이들의 구상과 계획을 가까이에서 들었음에도 큰 기대나 열의가 생기지 않는 것은 왜일까? 세 세력의 이념적·정책적 차이 때문일까? 아니다. 그런 것이 문제라면 애초부터 일정 규모 이상의 진보정당은 꿈꾸지 말아야 한다. 군소 정당이 아닌 이상 모든 대중정당은 ‘정당 내 정당체제’를 갖기 마련이다. 정파로 불리든 계파로 불리든 당내 이견의 다원적 조직화는 막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런 다원화의 힘을 잘 다뤄서 당을 좀더 활력 있게 만드는 실력을 갖추는 데 있을 뿐이다.
각 세력을 이끄는 이정희·유시민·노회찬·심상정·조승수 등 리더급 인사들의 개성적 차이 때문일까? 글쎄, 개성 강한 리더십 자원이 많은 것은 장점이 될지언정 그것 때문에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니면 융합이 어려울 정도로 각자의 지지 기반 사이에 정서적 차이가 커서 그럴까? 그런 차이는 활동가들 사이에서나 있을 뿐 적어도 유권자 차원에서는 사실 의미 없을 정도로 작아 보인다. 그럼 뭘까? 무엇 때문에 기대나 열정이 생기지 않는 것일까? 핵심은 이들이 정치의 문제, 권력의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서 용기나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정치의 세계에서 권력은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원천이다. 그런데 진보파들은 권력의 문제와 적극적으로 대면하고 권력을 선용할 수 있는 기백을 갖기보다, 늘 ‘정치적’ 혹은 ‘권력적’이라는 혐의를 받을까 두려워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정말 권력을 추구하지 않고 오로지 진보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실제는 권력을 추구하고 전략적 계산도 하는데 정작 그런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힘들어할 뿐이다. 이래서는 좋은 성과를 얻기 힘들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권력의 문제를 담대하게 다룰 유능하고 매력 있는 정치가이지 도덕가가 아니다. 지금껏 그들이 살아온 삶을 보면 모두가 시대의 소명을 회피하지 않았고 그 과업에 헌신했다.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을 만큼 인생 제대로들 살았다. 그런데 왜 정치 앞에만 서면 주저와 변명을 늘어놓는 것일까?
이들이 집단지도체제를 당연시하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없다. 정치의 길을 제대로 개척하려 한다면, 통합정당은 경선을 통해 지도부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세력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집단지도체제가 불가피하다는 식으로 통합 과정을 마무리한다면 그건 일종의 명사들의 결집일 수는 있어도 대중정당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시민들의 관심과 열정을 이끌어내기도 어렵다. 끊임없는 윤리적 시비 속에서 정신적으로 굴복당하는 일도 피할 수 없다. 경선은 매우 강력한 정당성의 기초를 제공한다. 통합 과정의 최종적 평결을 주권을 가진 당원/시민이 내리게 되기 때문이다. 당 대표로 출마한 세력들의 경쟁과 그에 대한 당원/시민의 결정을 통해 당의 진로와 정책 방향이 정해질 때 대중권력의 에너지가 발산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통합정당을 강력하게 이끌 강한 지도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통합정당의 미래는 없다는 게 솔직한 내 생각이다. 집단지도체제는 무책임성과 정파 간의 심리적 폐쇄성을 지속시킬 뿐, 대중정당의 길을 넓히지 못한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권은 짧은 시간에 경선과 단일화를 했고 그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는데, 그 사례에서 통합정당을 말하는 진보는 무엇을 배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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