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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민 <문화방송> 전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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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도곡동·BBK·다스와
차원이 다른 공적 질문이 있고,
관련자는 엄숙하게 답변해야 한다
김인종 전 경호처장이 <신동아>에 말한 내곡동 스토리는 깜짝 놀랄 일이었다. 요약하면 이렇다. “제2 사저는 1년 전 기획돼 12군데를 검토했고 최종적으로 내곡동을 적지로 보고했다. 엠비가 직접 내곡동을 둘러보고 오케이해 지난 5월에 샀다. 각하 개인 돈으로 샀고 아들 이름을 쓴 건 1가구 2주택 같은 시비를 걸 것 같아 내가 건의했다.” 처음부터 이명박 대통령이 주도한 기획이자 실행이라고 내막을 폭로한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설명하는 스타일이 특이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평가 부분이다. 야당이 공세를 취하고 국민이 오해하자 이 대통령이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그래서 정치적 부담이 되니까 김 전 처장이 책임지고 물러나야 되겠다고 생각했다는 설명이다. 야당의 정치공세에 원인이 있고 실제로 아무도 잘못한 일은 없다는 뜻이다.
대통령과의 친밀도로 봤을 때 그냥 해본 소리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쉽게 믿기도 어렵다. 야당만 입 다물었다면, 2013년 2월 퇴임 직전 그동안 공언했던 논현동이 아니라 내곡동으로 간다고 발표한 뒤 표표히 떠났을 때 국민들이 모두 이해했을까. 국민은 야당의 선동에 따라 이리저리 몰려다녔을까.
내곡동에는 이 대통령을 따라다닌 도곡동 땅, 비비케이(BBK), 다스 등의 문제와 성격적으로 비슷한 의혹이 겹친다. 누가 진짜 소유주냐, 돈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갔느냐 같은 질문이 그렇다. 내곡동에는 다른 심각한 질문이 있다. 곧 국고가 들어갔느냐는 문제다. 이전 문제들에서 개인 돈을 어떻게 썼느냐고 물었다면, 이번에는 차원이 다른 공적 질문이 있고 관련자는 엄숙하게 답변할 의무가 있다.
이 대통령을 둘러싼 부동산 문제가 법률적으로는 끝났는지 모르지만 정치적으로 아직 살아 있고, 더구나 국민들이 아직 뚜렷하게 ‘도곡동’을 기억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놓인 어떤 대통령도 상식적이라면 직접 땅에 대해 소극적으로도 나서기 어렵다. 이런 역사성과 상황을 본다면 이 대통령이 직접 관여했다는 대목을 믿고 싶지 않다. 만약 김 전 처장의 말이 진실이라면 상식적인 사람들은 말하기 힘든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은 김 전 처장이 언론매체에 저간의 사정을 털어놓은 진짜 이유다. 작심하고 언론에 말했거나 아니면 실수로 흘렸다고 볼 수 있다.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이거나 두 가지가 적당히 섞여 있을 것이다.
작심한 폭로였다면 잘못하지 않은 일에 정치적 책임을 지워 높은 벼슬을 떼어버려 섭섭한 나머지 결행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적으로 물러난 고위 공직자들은 대부분 겉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지만 항상 대통령에게 섭섭하다는 생각을 마음에 품고 있다가 적절한 시점에 풀어놓았다. 그도 그럴 수 있다.
김 전 처장이 실수로 언론에 그렇게 설명했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그의 설명은 청와대의 공식 설명과 다를 뿐 아니라 “본의 아니게 많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쳐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이 대통령의 말과 동떨어진다. 내곡동에 대해 “안타깝다”고 말한 진의가 불분명해 당시에 무슨 의도를 담은 것인지 해독하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말을 믿는다면 속내로, 실제로 전혀 안타깝지 않았다는 청와대의 집단사고와 평가를 담고 있다. 공식 설명에 담은 대통령의 말은 진심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가능성을 역시 믿고 싶지 않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매일처럼 일어나고 잊혀져 간다. 내곡동 스토리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관련자에게 불행한 점은 도곡동과 내곡동이 돌림자로 ‘곡’자를 갖고 있어 국민들이 외우기 쉬워 잊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리고 국민들은 얼마나 땅에 관심이 많고 잘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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