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1.24 19:23
수정 : 2011.11.25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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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삼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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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와 탐욕, 비열함의 승리다
수백년 이어져온 당신들의 세계가
또 한번 큰 걸음을 내디뎠다
나는 이게 궁금하다. 한나라당 홍준표씨는 그날 저녁을 어떻게 지냈는지가. 그날 오전 소속 의원들에게 저녁 약속 다 취소하라고 지령을 내리셨다는데, 일이 싱겁게 끝나버려서 좀 머쓱했을 것 같다. 1996년 성탄절 새벽, 노동법 날치기를 해놓고선 ‘양지탕’집에서 축배를 들었다는데, 설마 이번에도 축배를 들기야 했겠냐만, 딴 약속도 없었을 테니 모여서 ‘건배’ 정도는 했을 것 같다.
박근혜씨는 그날 그 시간, 화장을 고치셨다 한다. 차기 대선주자에다 전직이 ‘공주’인 분을 그리되도록 놔두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멱살을 잡힌다든지, 질질 끌려나온다든지 하는 스타일 구기는 장면이 연출되었으면 얼마나 곤란했을 것인가. 다행히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다만 타이밍이 나빴다. 화장이야 늘 고치는 건데, 하필 그날 그 시간이라니. 보통 사람이라면 가슴이 떨려 당최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그 긴장된 순간에 보여준 그의 도도함과 강심장이 괜히 입방아에 오르게 되었다. 옥에 티가 아닐 수 없다.
그날 남경필씨는 목을 쓰다듬었을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겠는가. “국회가 농민한테 저항할 용기를 내야 한다”고 주한 미국대사 앞에서 호기롭게 한마디 한 게 들통난 것은 대수롭지 않았을 것이다. 지역구인 수원 팔달에는 농민이 별로 없을 테니깐. 그러나 이번 건은 무게가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그간 한나라당이면서도 한나라당 아닌 척, 수구 꼴통이 차려준 잔칫상 잘 드시고는 ‘수구 꼴통, 나는 모르네’ 하시던 분 아닌가. 그렇게 ‘되는 그림’만 찾아다니며 외줄타기 잘해오셨는데, 그 십수년 노력을 한 방에 다 말아먹을지도 모를 그날 그 ‘그림’을 기막힌 작전성공으로 피해갔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날 박희태씨는 개화파의 스승 박규수의 묘소를 둘러보셨다 한다. 그날 오후에 벌어질 일들은 이미 ‘단도리’해 놓으셨고, 아수라장 한가운데서 마이크 들고 의사봉 내리치는 험한 짐은 부의장에게 넘겨놓았으니, 이제 본인은 유유자적 한 폭 동양화 같은 그림을 남겨주면 안성맞춤이었다. 그런데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 같다. 그날 박희태씨는 박제순의 묘소를 둘러보는 것이 맞지 않았나 싶다. 동학농민군을 토벌했고, “명령이 있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라며 을사조약을 승인했으며, 끝내 한-일 병합의 주역이 되었던 박제순 말이다. 선배에 대한 예의라는 차원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그날 그 시간, 나는 며칠 앞으로 다가온 학교 축제에 쓸 물품을 사기 위해 시장통을 다니고 있었다. 철물점에 들어가니, 주인아저씨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한-미 에프티에이 정리됐어예!” 했다. 한 대 맞은 듯 멍해졌다. ‘며칠 남았잖아.’ 그때까지 나는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저씨는 “정동영이 글마는 지가 뭐라꼬…” 하며 말을 이었다. 그분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경상도와 전라도의 싸움으로 이해하고 계신 듯했다.
축하한다. 당신들의 승리다. 당신들의 무지와 탐욕, 잔인함과 비열함의 승리다. 새삼스럽지는 않다. 당신들은 늘 그래 왔으니까. 당신들에게 유일한 진리는 ‘힘’이었고, 그 힘을 좇아 외세에 빌붙고 약자들을 겁박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던 당신들은 언제나 승리를 구가해 왔으니까. 지난 11월22일 수백년 이어져온 당신들의 세계가 또 한번 성큼 큰 걸음을 내디뎠다. 물론 당신들은 그날 당신들이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인지, 그 의미를 아직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다만 본능이었으리라고 나는 짐작한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피눈물이 이 협정문을 적시게 될지, 이 악한 세계가 어떻게 출렁이게 될지 그것은 일단 지켜보기로 하자. 이 분노, 이 슬픔을 어떻게 되갚아주어야 할지, 나는 그것이 채 가늠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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