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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1.27 19:18 수정 : 2011.11.27 19:18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당당한 ‘안철수 현상’을 기대한다
정책과 비전을 과감히 말하고
대중의 평가와 지지를 조직하라

‘안철수 현상’을 둘러싼 여러 해석들을 보면서, 민주정치의 핵심 개념들이 오용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포퓰리즘, 데마고그, 그리고 정당에 대해 말해보고 싶은데, 결론부터 말하면 포퓰리즘, 데마고그, 정당은 민주주의의 중심 요소들이자 이것들이 없다면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중 혹은 민중을 뜻하는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에서 유래된 포퓰리즘은 “보통 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려는 정치동원 양식”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어느 민주주의 나라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포퓰리즘 현상은 존재하며, 특히나 그 나라의 정치가 다수의 대중적 열망과 욕구를 잘 대표하지 못할 경우 더욱 활발하게 표출된다. 이를 통해 경직된 사회구조와 편협한 정치체제가 자극을 받고 변화되는 좋은 효과를 낳기도 한다.

안철수 현상에는 분명 이런 요소가 있고, 그래서 우리가 기울여야 할 관심은 어떻게 하면 그런 효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있다고 본다. 일반 시민을 뜻하는 그리스어 데모스(demos)에서 유래된 데마고그 역시 일반 언론에서는 “거짓 약속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사람”처럼 사용되고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본래는 “시민의 기대와 신뢰를 불러일으키는 매력적 정치가 내지 정치 연설가”를 의미했으며, 데마고그로 불렸던 최초의 정치가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페리클레스였다. 민주주의가 제도나 절차와 같은 비인격적인 요소로만 작동해야 한다고 믿는 것은 인간의 현실이 될 수 없다. 인간이란 추상적 이념이나 이상에도 영향을 받지만, 그보다는 뭔가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매력을 갖는 인물에 끌리고 그 때문에 그를 신뢰하고 그의 이상과 이념을 공유하게 되는 일이 더 일반적이다. 이러한 특징은 안철수 현상에서도 발견되며, 지금과 같은 사회와 정치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에게서 위로를 얻고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은 민주주의의 일탈적 현상이 아니다.

물론 포퓰리즘이나 데마고그의 현상이 민중적 요소를 갖고, 잘못된 사회구조에 대한 불만을 넘어 구원자를 바라는 대중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는 없다. 포퓰리즘과 데마고그의 현상이 일상화되었던 로마 공화정이나 그리스 민주정에서와는 달리, 현대 민주주의는 그런 대중적 열정을 정당과 정당 지도자라는 틀로 수용해 실천해 왔으며, 그 때문에 정당 간 평화적 권력 투쟁과 정변 없는 정권 교체가 가능했다. 정당이 아니라 포퓰리즘이나 데마고그 그 자체로 기존 체제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게 된다. 대중운동과 지도자의 능력에 의존해 체제를 운영하려 했던 독일의 나치즘은 그것의 극단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과 영국의 경우 민주주의가 자리잡게 되었을 때 그 의미는 “정당이 정부가 되는 것”(party government)으로 정의되었고, 독일의 경우 나치즘의 유산을 극복하기 위해 전후 체제의 중심 목표를 “정당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Parteiendemokratie)로 설정했다.

안철수 현상도 막연한 대중적 정서와 기대에서 맴돌 것이 아니라 대안적 정당으로 발전되었으면 좋겠다. 기존 정당들과 달리 어떤 정책과 비전으로 집권하고자 하는지 과감히 말하고 대중의 평가와 지지를 조직하려 노력했으면 한다. 그렇게 해서 지금과 같이 답답하고 협소한 정치를 깨뜨리고 대중의 열정이 더 넓고 강렬하게 투입되어 우리의 민주정치가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 민주정치의 싸움터에 당당하게 나서서 실력을 겨뤄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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