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뿐 아니라 자유시간을 나누어
노동의 기쁨과 휴식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시간분배를 고민할 때
주유소·편의점·커피점 등에서 일하는 청소년 알바생들의 열악한 근로여건과 인권침해, 노동자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비정규직, 심각한 청년실업률, 60살 이상 은퇴 가구 중 소득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은퇴빈곤층’ 비율 40%…. 일하는 사람들의 처지가 이렇대서야 경제성장의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그뿐인가. 경제활동인구에서 차지하는 영세자영업자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15% 안팎인데 우리는 그 두배에 달할뿐더러 그들 대부분의 월평균 수입이 200만원 이하이다. 가계부채의 상당부분이 이들 자영업자의 생계형 부채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일자리 관련 뉴스가 온통 우울한 것뿐인데 정부·여당이 내년부터 공공부문의 기간제 노동자 중 ‘상시적·지속적’ 업무를 맡아온 9만7000명가량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다고 한다. 정부 집계로도 공공부문 비정규직은 34만여명에 이른다. 비정규직 차별 해소에 아직은 턱없이 부족한 대책이지만 일자리 문제가 구체적으로 논의되려나 싶어 주목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현대자동차가 2013년부터 밤샘노동을 없애고 주간연속 2교대제로 바꾸기로 했단다. 이것은 노사가 2009년에 시행하기로 이미 합의한 것인데, 작업시간 감소에 따른 생산량 유지 방안, 임금 감소 대책 등이 합의되지 않아 시행하지 못했던 것이다. 기본급은 낮고 초과근로수당은 높은 한국의 임금구조도 작업시간 감소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고용 없는 성장’을 우려하지만, 경제가 발전하고 노동생산성이 올라가면 같은 물건을 만드는 데 드는 노동력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실제로 모든 산업에서 기계화·자동화가 진행되면서 더 적은 노동력 투입으로 더 많은 생산이 가능해졌다.
19세기 산업혁명이 인류의 물질적 생산을 증진시켰다면 20세기 정보기술(IT) 혁명은 인류의 자유시간을 증진시켰다고들 말한다. 물질적 가치로부터 시간 가치로의 이러한 전환이야말로 유한한 인생의 ‘생애 주기’를 풍요롭게 해주는 진보가 아닌가.
그렇다면 현대경제의 놀라운 생산성 증가에 맞추어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노동의 기회를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 그리고 여가의 자유시간을 고부가가치의 사회적 상상력에 투자하는 것, 이것이 일자리 창출의 정석 아닐까. 충분한 휴식과 여가활동, 각종 사회서비스와 교육·문화생활을 통한 창의력 투자는 다시 생산성 증가로 이어질 테니까. 과도한 노동에 따른 질병이 감소하고 스트레스로 인한 범죄도 줄어들어서 각종 사회적 비용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혁명으로 주당 80시간이던 노동시간이 60시간으로 줄었고 20세기 들어 다시 40시간으로 줄었다. 여전히 오이시디 최장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주5일 근무를 조금씩 확대해나가고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주당 노동시간을 30시간, 나아가 20시간으로 단축하자는 선거운동을 제안하고 있다. 구체적인 속도야 각국의 사정에 따라 조정될 일이지만 변화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일만 하던 세대로서는 사실 여유시간이 주어져도 당혹스러울 수 있다. 이제는 개인도 사회도 일자리뿐 아니라 자유시간을 나누어 노동의 기쁨과 휴식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공정하고 효율적인 시간분배를 고민할 때가 된 것이다. 철학자(philosopher)라는 말은 논리(logos)를 사랑(phil)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논어>에서도 “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며 배우고 깨닫는 인생의 기쁨을 일컬었다. 특권층만 누릴 수 있었던 이런 인생의 관조와 희열을 이제 오랜 노동의 덕분으로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그런 역사의 시간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김윤자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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