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2.04 19:14
수정 : 2011.12.04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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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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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비서는 바로 일상적으로
국민의 기본권과 법을 무시한
의원들이 만들어낸 괴물이다
선관위 누리집(홈페이지) 공격을 의원 비서가 주도한 것으로 밝혀지자 한나라당은 신속한 반응을 보였다. 당사자인 최구식 의원은 마른하늘에 날벼락 격이라며 자신이 연루되었다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나섰다. 홍준표 대표는 당에서 벌인 일이 아니고 직접 관계된 일도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사건은 상대 후보에 대한 단순한 인신공격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의 투표를 방해한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로서 만일 한나라당이 관련된 것으로 확인된다면 해체를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일이다. 여당이 이 사건을 비서 개인의 독단적인 범행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의원으로부터 지시를 받거나 의논하지 않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면 여당의 책임이 없을까. 이 사건에는 20대에 불과한 비서가 무슨 비용으로 그런 사건을 일으켰으며 다수의 투표소가 바뀐 것을 어떻게 알고 선관위 누리집을 공격할 생각을 했는지 등 많은 의문이 있다. 하지만 그런 의문을 모두 접어두고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비서 개인의 돌출행동이라고 가정해보자. 과연 여당은 책임을 면할 수 있을까.
이번 정부 들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국기를 뒤흔들 만한 불법행위가 적지 않게 일어났다. 그러나 그런 사건이 있었을 때 여당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총리실 직원들의 민간인 사찰 사건이다. 공무원들이 대포폰을 만들어가며 조직적으로 시민을 사찰한 것은 정권이 흔들려도 할 말이 없는 사건이다. 검찰이 뒤늦은 수사로 증거 인멸을 자초하는 사이 총리실 직원들은 전문 업체까지 끌어들여 하드디스크를 삭제했다. 실무자 몇 명이 구속되었을 뿐 배후는 밝혀지지 않았고 정부 차원의 사과나 해명은 없었다. 그때 한나라당 의원들은 무엇을 했을까. 조직적으로 법을 어긴 정부를 비판하기는커녕 사찰 피해자에 대해 ‘전 정권 실세들을 위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터무니없는 누명을 씌워서 수사의뢰를 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최구식 의원의 비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보안사 시절 정치인 뒷조사를 하다가 엄청난 물의를 일으키고 명칭마저 바꾼 기무사가 교수들의 이메일을 해킹하고 경찰 전산망을 통해서 다수의 민간인에 대해 버젓이 신원조회를 해온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한나라당은 흔한 성명조차 내지 않았다. 국가적 차원의 불법행위에 눈감는 여당의 모습에서 의원의 비서는 무엇을 배웠을까.
단순히 불법을 외면하는 것에만 그치지도 않았다. 교원노조 명단을 공개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법원의 결정이 있었을 때 한나라당 의원들은 오히려 집단적으로 명단을 공개하면서 법을 무시하는 행태를 보였다. 당시 조전혁 의원의 명단 공개에 동참한 강용석 의원은 그 이유를 “법리보다는 의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 헌법상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법원의 결정보다 ‘동료 의원과의 의리’를 당당하게 앞세우는 의원들의 행태가 이번 사건을 일으킨 비서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하면 무리한 주장일까.
국회의원이 비서에게 선관위 누리집을 해킹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는 차마 믿고 싶지 않다. 여당이 조직적으로 투표 방해에 나섰다고는 생각조차 하기 싫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번 일에 국정을 책임진 여당의 책임이 없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견강부회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은 헌법을 수호하고 법치를 세워야 할 때마다 직무를 유기해온 여당 의원들의 잘못된 행태에서 찾아야 한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의 투표를 방해해도 좋다고 생각한 비서는 바로 일상적으로 국민의 기본권과 법을 무시한 그 의원들이 만들어낸 괴물이다. 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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