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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2.07 19:16 수정 : 2011.12.07 19:16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북한 참상 보도는 고통을 물화시킨다
관람자가 영상 속 사람과 어떠한
인간적 관계도 못 가지기 때문이다

몇년 전 우연히 한 인터넷 여성의류 쇼핑몰을 알게 되었다. 뉴스 옆에 자주 뜨는 광고 때문에 호기심에 이끌려 들어가 보니 높은 품질과 저렴한 가격으로 ‘대박’을 내고 있었다. 시험 삼아 겨울 코트를 구입했다가 품질과 가격에 반해 그 후로도 물건을 더 구입하였다. ‘지름신’이 내리기에 딱 좋은 경우여서 조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이 쇼핑몰이 가끔 요동을 겪었다. 처음에는 환율 때문에 수입 원단 대금 결제액이 늘어나서 그럴 것이라고 이해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만이 아닌 듯했다. 2010년에는 상품 배송이 잘 되지 않는다는 구매자들의 불평이 ‘상품평’ 난에 자주 올라왔다. 판매자 쪽에서는 개성공단과의 연락 난조 때문이라는 안내문을 올리며 양해를 구했다. 연평도 포격사건이 있은 다음의 일이었다. 아하, 이 회사가 가격경쟁력이 높은 상품을 판매할 수 있었던 이유와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문제는 남북관계였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대북정책의 기조는 북한 압박 정책을 통해 핵문제와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를 개선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취지에다 북한 경제사정도 개선해 주겠다는 생각을 담아 나온 것이 ‘비핵·개방·3000’안이었다. 북한인권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고, 이 대통령이 임명한 현병철 위원장 아래 국가인권위원회도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그렇게 4년이 지났다. 이러한 압박의 결과로 북한 인권은 개선되었는가. 정치체제가 바뀌었는가. 경제수준은 높아졌는가. 북한 주민들의 참혹한 생활과 열악한 인권수준에 대한 기사는 여전히 언론을 뒤덮고 있다. 특히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일은 현재와 같은 남북관계에서 북한 주민들의 참상을 보여주는 영상 혹은 화면 보도다. 그것이 진실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그 진실이 어떤 방식으로 제시되며 관람자는 이와 어떠한 관계를 맺느냐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남쪽 사람들에게, ‘북쪽은 이렇게 못삽니다. 당신들은 남쪽에 살아서 행복하지요’라고 말하기 위해 방영되는 듯한 이들 영상 혹은 사진 위에는 개탄하는 논평이 입혀지곤 한다. 마치 지난 세기의 엽기영화 <개 같은 세계>(몬도 카네)를 보여주듯, 북한의 참상에 대한 보도 자체도 인간의 고통을 물화시키고 감각적 소비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리곤 한다. 관람자는 영상 속 사람의 고통과 어떠한 인간적 관계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쪽에서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조차 봉쇄되어 있지 않은가.

이 정부 출범 후 남쪽은 북한의 무력공격에나 부딪혔을 뿐이고, 가장 실용적인 차원에서 보더라도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경제수준을 높일 기회는 물론, 한국 경제가 활로를 찾을 기회도 그만큼 제한되었다. 남북 경협에 참여한 한국 경제인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날치기로 통과된 다음날, 일부 언론에서는 ‘경제영토 넓어졌다’는 대문짝만한 글씨로 협정 체결을 환영하였다. 경제영토를 넓히겠다는 생각과 의지 자체야 가상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유례없이 불평등한 조약을 맺어가면서까지 새로운 경제영토를 찾겠다고 무리수를 두는 것이 시급한가, 원래 우리 모두의 것인 한반도라고 하는 이 영역과 이 땅 위의 모든 사람을 한데 아우를 수 있는 경제활동이 더 효과적인가.

신임 통일부 장관이 들어선 뒤 새로운 대북정책에 대한 기대도 간간이 떠오르고 있는 모양이다. 인도적 지원은 당장 재개되어야 한다. 그리고 남북 경제협력 강화는 한국의 경제와 소비자들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경제를 가장 우선시한다고 자처하는 보수세력인 정부와 집권당이야말로 이를 고려해야 한다.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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