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1.08 19:23
수정 : 2012.01.08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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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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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경선이 인기를 끌지만
정당의 중심은 당원
열린 게이트로 누가 들어올까
민주화 이후 야당이 집권했을 때 주류언론들은 반정부 매체로 동질화되었다. 그들 사이에 경쟁이 있었다면 누가 더 세게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는가를 다투는 정도였다. 비판언론들은 달랐다. 다양한 매체들이 등장했고 기사 편집에서도 각자의 개성과 특징을 발전시켰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차이는 흥미로웠고,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었으며, 작지만 활력 있는 독립 매체들의 실험도 보았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비판언론 진영에서도 반정부 매체로의 동질화가 심화되었다. 이들 역시 누가 더 세게 반대하는가를 두고 경쟁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서로의 차이가 줄어 매체 특성에 따라 다르게 선택해 읽어볼 유인이 약해졌다. 강한 주장만 부각되니 인터넷 포털 뉴스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짧고 빠른 전달력을 가진 신흥 매체들의 위력이 급격히 커졌다. 의견의 양극화는 증폭되고 약한 주장이나 제3의 시각은 소외되었다.
게이트키핑(gatekeeping)이라는 용어가 있다. 뉴스의 원천이 되는 사실과 정보가 기사 작성자/편집자에 의해 여과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아주 오래된 개념이다. 물론 게이트오프닝이라는 개념은 없었는데, 최근 언론 상황을 보면서 그 필요성을 생각해보게 된다. 게이트키핑에서 문제의 핵심은, 사실과 정보를 선별하는 기사 작성자/편집자의 가치 기준에 있다. 그리고 그것의 부정적 효과는 전체 여론 가운데 특정 집단의 의견을 선택적으로 배제하는 데 있다. 반면 게이트오프닝의 핵심은, 기사 작성/편집이 특정 뉴스소비자 집단의 반응에 과도한 영향을 받는 데 있다. 게이트키핑에서는 뉴스생산자의 권력 효과가 문제라면, 게이트오프닝에서는 뉴스소비자의 권력 효과가 문제가 된다는 말이다. 물론 피드백되어 들어오는 뉴스소비자들의 요구가 다양한 선호와 의견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아마도 그건 언론의 민주적 이상에 다가가는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게이트오프닝의 문제는 빠르고 강한 반응을 보이는 특정 뉴스소비자 집단에 의해 기사 작성/편집이 지나친 영향을 받고 결과적으로 기사에 반영되는 전체 여론의 폭이 급격히 좁아지는 데 있다.
게이트키핑의 부작용은 언론 매체들의 가치 기준이 전체적으로 수렴될 때 극대화된다. 한때 많은 연구자들은 뉴스를 선별하는 게이트키퍼들이 대개 중산층 출신으로, 갈등보다는 통합을 강조하거나 강한 주장 내지 선호를 가진 사회 하층들의 관심사를 배제하는, 일종의 중도적 수렴 경향이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우려했다. 이에 반해 게이트오프닝의 부작용은 강한 두 반대 진영으로 여론이 양극화될 때 극대화된다. 진영 간 적대적 경향이 강화되면서 진영 내에서는 참여의 열정이 강한 집단의 의견이 과잉 대표되기 때문이다. 대통령 중심제이면서 양당제를 가진 국가에서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지는데, 우리의 경우 언론뿐 아니라 정치에서도 매우 두드러진 현상이 되었다. 한동안 정당들은 공천에 있어서 게이트키퍼들의 영향력을 줄이고자 여론조사와 국민경선을 과잉 적용해 가뜩이나 약한 당의 대중 기반을 더욱 축소시켰다. 이제는 당을 이끌 지도부 구성도 “국민에 개방”하겠단다. 그 오픈된 게이트로 누가 들어올까? 강한 열정을 가진 참여자들 덕분에 당장은 큰 관심을 끌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당원이 될 유인을 줄이고 당이 포괄하는 의견의 범위를 좁힌다면, 그게 과연 민주정치 발전에 유익한 일일까? 아무리 개방이 좋다고 해도 정당이 당원을 중심으로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일을 외부자의 힘을 들여와 해결하려 할 때 그 부작용도 적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게이트키핑만이 아니라 게이트오프닝의 왜곡효과도 문제일 때가 있다.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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