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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12 18:48 수정 : 2012.01.12 18:48

김여진 연기자

쌍용자동차에서 ‘희망’을 친다
빼앗겨도 다시 친다
그 주위에 사람들이 함께 선다

희망이란 말이 아프다. 아름답고 따듯한 저 단어를 씀으로 우리의 마음도 슬픔에 물들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보여서다. 희망버스, 2011년, 한진의 85호 크레인 위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의 목숨을 건 소원, 동료 노동자들의 복직. 그 가족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 달리게 된 버스였다. 웃으며 끝까지 함께하자 했다. 웃을 상황이라 웃자고 한 게 아니었다. 그래야 많은 사람과 함께할 수 있고 그래야 끝까지 싸울 힘을 낼 수 있으니까였다. ‘사람의 마음’이란 단순하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 머리로는 생각해도, 그 길이 힘들고 고통스럽게만 보이면 나서지 않는다. 나서서 싸우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참 훌륭하세요, 대단하세요!”라고 존경은 표할지언정 그 길에 함께 서지 않는다. 나부터가 그렇다.

그 절박한 목숨을 건 투쟁 중에 웃음으로 말을 건 사람이 김진숙이었다.

트위터라는 소통의 공간에서 그녀가 가진 이 웃음의 힘은 어떤 눈물보다 힘이 셌다. 물론 웃게만 한 건 아니었다. 웃던 그녀가 차분히 현실을 말할 때, 고통을 말할 때 비장미를 훌쩍 뛰어넘는 감동이 사람들을 움직였다. 그녀와 함께라면 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녀의 웃음이, ‘희망’이라는 해사한 단어가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니 훨씬 더 가슴을 찔러 절절히 느끼게 한다. 외면하거나 눈감을 수 없게 한다.

또다른 곳에서 이 ‘희망’을 친다.

‘희망텐트’를 친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길고 긴 투쟁, 이미 열아홉명의 목숨을 앗아간 그곳에서 말이다. 2011년 내내 그곳에서 들려온 아픈 소식, 회사 쪽은 461명의 복직을 약속했었다. 그중 단 한 사람이 복직했다. 지금 철저히 회사 쪽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노조의 위원장이다. 법원도 복직을 명했다. 지키지 않고 있다. 회사 앞에 텐트를 치고 농성을 하자 경찰이 와서 텐트를 뺏는다. 여기저기서 지원한 물품들을 어떤 근거로 뺏어가냐고 항의해도 힘으로 그리할 뿐이다. ‘희망퇴직’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름으로 쫓겨난 사람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또 누가 그저 심장이 멎어, 또는 스스로 끊어버려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다시 ‘희망’을 말한다. 한진중공업에서 희망을 기획했단 이유로 시인이 구속 수감되어 있고, 한진의 해고자들 역시 회사 쪽이 합의서를 이행하기를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다. 그 가운데 회사 쪽은 또 하나의, 자신들과 뜻을 같이할 노조를 만들었다. 불안함이 엄습한다. 한진의 상황이 쌍용자동차처럼 흘러갈까 봐, 약속을 지키지 않는 회사 때문에 희망의 끈을 놓는 사람들이 생겨날까 봐, 우리의 ‘희망’이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길고 긴 싸움 끝에야 이루어지는 것일까 봐. 그래도, 고맙게도 쌍용자동차에서 ‘희망’을 친다. 빼앗기고 또 빼앗겨도 다시 친다. 그 주위에 사람들이 함께 선다. 물품을 보내주고, 응원도 하고, ‘와락’ 끌어안으며 상처를 치유해간다.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 웃자고 아무리 결심해도 웃음이 나지 않는다. 왜냐면 지금 난 그곳으로 달려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곳에 많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고 듣기만 해서이다. 함께 있는 사람들은 분명 웃기도 할 거다. 울다가 웃다가, 그렇게 해오지 않았다면 여기까지도 오기 힘들었을 거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곳에서 눈 돌리지 않는 것뿐이다. 그 아프고 단단한 희망의 끝을 함께 보겠다고 약속할 수 있을 뿐이다. 나도, 내 뱃속 아이도 살아가야 할 세상, 그 고단한 싸움을 대신 해주고 있는 그 사람들에게 잔뜩 진 빚을 갚을 길, ‘희망’을 놓지 않겠다. 보고야 말겠다. 김여진 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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