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1.15 19:31
수정 : 2012.01.15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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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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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 프리드먼을 한번 읽어보라
극단적 자유주의를 곱씹다보면
대응논리가 더 풍성해진다
대학 입학 철이 되었다. 대학에 들어가는 후배에게 선물할 책을 고를 때면 그 시절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본다. 대학 때 좋아했던 책은 여러 권 있지만, 그때가 아니면 읽기 힘들었을, 지금 생각해도 그 책을 만난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책은, 조금 뜻밖의 책이다. 그 당시나 현재나 나의 생각과는 상당히 다른 주장을 펼쳤던, 극단적인 우파 경제학자가 쓴 책이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친구 집 책장에서 밀턴 프리드먼이 쓴 <선택의 자유>라는 책을 발견하고 무심코 빌려왔다가 며칠간 손에서 떼지 못한 일이 있다. 평상시 별생각 없이 보던 사회현상을 너무나 흥미있게 설명해놓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그리고 대기업 최고경영자가 그렇게 터무니없는 수입을 올리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자유로운 경쟁이 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지, 복지가 왜 사회를 망가뜨리는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이 석학은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말해주고 있었다. 대가의 글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처음 느끼는 순간이었다.
25년이 지난 지금, 프리드먼의 책을 다시 읽는다면 어떨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틀렸다고 자신있게 말할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세계경제를 요동치게 만든 금융위기의 근본원인이 바로 프리드먼 같은 사람이 주장했던, 어떠한 규제도 불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월가는 수익률을 극단적으로 높이기 위해 이공계 출신의 수학 전문가들을 끌어들였고 이들은 복잡한 방정식에 기초해서 조금이라도 계산이 빗나가면 시장 전체가 파멸할 수 있는 투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은 개인의 탐욕에 기초한 이윤의 추구와 경쟁이 모든 사람에게 부를 안겨다줄 것이라며 이들을 칭송하기에 바빴다. 그 결과는? 전세계가 동시에 파산할지 모르는 최악의 위기가 도래했다. 프리드먼의 생각은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학 시절 프리드먼의 책을 읽은 것을 행운으로 여긴다. 다른 무엇보다도, 잘못된 생각도 때로는 정말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책을 읽지 않았다면 극단적인 자유주의가 나름 얼마나 정교한 이론체계를 갖추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무조건 반대를 해왔을 것이고, 만약 논리적인 설득을 당했으면 쉽게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린 시절 프리드먼의 해박한 설명을 접해본 덕에, 오히려 ‘상대방’의 논리에 대해서 알고 나름의 반대논리를 만들어볼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의 생각과 정반대의 입장에서 제시된 치밀한 분석과 날카로운 논증을 접해본 덕에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교훈이었다.
그런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최근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귀에 거슬리는 주장을 하는 사람을 적으로 몰아붙이는 움직임이 생겨난 것은 매우 걱정스럽다.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지도 않으려고 하는 것만큼 힘없는 허세는 없다.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논리에 부딪히면 한순간에 ‘훅 갈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약한 ‘우리 편’이 아니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열린 마음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것이다.
프리드먼의 <선택의 자유>는 절판이 되어서 현재는 구할 수 없다. 그러나 선배로서, 대학에 입학하는 후배의 손에 책을 한 권 쥐여준다면, 나나 그 후배의 평소 생각과는 전혀 다른 주장을 하는, ‘남의 편’이 쓴 책을 선택하고 싶다. 나와 다른 생각을 들어보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이 세계를 헤쳐나가는 데 진정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 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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