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1.25 19:18
수정 : 2012.01.25 19:18
세계 농촌에서 우리처럼 논 한가운데
느닷없이 아파트나 러브호텔이
들어서는 황당한 풍경은 볼 수 없다
아파트 분양 신청도 아니건만 이 추위에 새벽부터 100m가 넘는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지난 10일 고용노동부가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 외국인 노동자를 배정하기로 하자 전국의 농촌 곳곳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일부 농민은 이틀 전부터 가스레인지, 텐트에 담요까지 동원하여 밥을 지어 먹어 가며 밤새 줄을 섰다고 한다.
주름살이 깊이 팬 아주머니는 일찍부터 줄을 서서 번호표를 받았는데도 자기 앞에서 대기인력이 소진되어 외국인 노동자를 배정받지 못했다며 울상이다. 이렇게 어렵사리 외국인 노동자를 배정받아도 농사 도중에 도시의 산업현장으로 빠져나가기 일쑤여서 또 애를 먹는다고 한다.
농민들은 정부나 지자체가 산업현장의 구인·구직난에는 신경을 쓰면서도 농촌의 인력수급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분개한다. 무역 1조달러 시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이어 한-중 에프티에이가 추진되고 있는 2012년 한국 농촌의 현실이다.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도시로 떠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선진국에서도 오래된 주제였다. 그런데 농경사회, 산업사회를 지나 정보사회를 거치면서 문화·생태의 가치가 농업과 농촌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망하고 있다.
밀집사육과 유전자조작에 의한 대량생산, 대규모 농축산물 무역이 세계화로 확대되면서 농장에서 식탁에 이르는 거리, 이른바 ‘푸드 마일’은 유례없이 증가했는데 반대로 우리 식탁의 안전, 미래 세대의 쾌적한 환경은 급속히 축소되었다.
이처럼 쏟아져 나오는 패스트푸드의 홍수 속에서 먹거리의 안전성, 생태계 오염의 심각성이 부각되자 세계 농업에 새로운 대안 패러다임이 등장하고 있다. 세계의 농촌은 환경과 문화가 역동적으로 융합하는 새로운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유기농을 중심으로 농산물의 안전성과 신선도를 나타내는 라벨링 제도가 확산되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는 계약형 직거래, 신뢰형 시장 확보를 위한 협동조합이 확대되고 있다. 상업지구와 주거지역을 구분하는 도시계획처럼 농촌도 경관보전지역과 문화시설단지, 우량농지를 구획하여 개발한다. 우리처럼 논 한가운데 느닷없이 아파트가 들어선다든지 심지어 빨간 페인트칠을 한 러브호텔이 들어서는 황당한 풍경은 볼 수 없다.
외식 비중이 커지고 가공식품의 소비가 늘면서 농산물의 소비 형태에서 가공 단계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들 식자재의 80%가 수입농산물로 채워지고 있다. 우리나라 식품산업의 시장규모는 연 150조원 규모에 달하여 국내총생산(GDP)의 10~15% 안팎에 이르고 삼성전자의 1년 매출액과 거의 맞먹는다. 더욱이 식품산업은 티브이·자동차 같은 내구재산업보다 내수효과가 크고 고용효과도 훨씬 크다.
농업경제학자들에 따르면, 경기도에서는 이미 김상곤 교육감이 시작한 친환경 무상급식으로 식재료의 직거래가 늘고 있고 농업인들의 소득 증가는 물론 농촌의 일자리 창출에도 효과가 기대된다고 한다. 각종 구내식당의 급식에 이런 모델이 확대된다면 농업은 지속가능 성장의 새로운 동력이자 기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동 간격이 점점 더 줄어드는 주상복합단지들, 과연 이런 주거형태가 얼마나 갈까. 이미 작은 텃밭을 가진 땅콩주택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농촌형 혁신학교’가 등장하면서 아이들 교육 때문에 도시로 떠나던 풍속 대신 곳곳에서 젊은이들의 귀농을 볼 수 있다고도 한다.
에프티에이란 결국 이익을 보는 수출 대기업과, 농업을 비롯하여 손해를 보는 내수 중소기업의 국내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에프티에이의 시대, 농촌에 기회를 주는 전기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김윤자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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